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09 16:43 수정 : 2019.06.09 19:49

아베 신조 일본 총리/EPA 연합뉴스

새 일왕 즉위 전후 모든 국민이 떠들썩한 일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 사회의 병리현상이 심각하다. 5월28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51살 남성이 사망자 2명을 포함해 20명의 사상자를 낸 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의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인 6월1일에는 도쿄 네리마구에서 76살 아버지이며 전 농림수산성 차관까지 지낸 엘리트였던 인물이 44살 아들을 흉기로 살해했다. 가와사키 사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아들이 집 근처 학교 운동회 소리가 시끄럽다고 화를 내자, 아들이 아이들을 해치기 전에 자신이 아들을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의 사건의 가해자, 뒤의 사건의 피해자는 니트족(직업이 없으며 일할 의지도 없는 젊은이)이었다.

두 사건은 흉악한 인물들이 저지른 돌발적 범죄라고만 결론지을 수 없다. 일본 사회의 통합의 위기 징조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두 사건 범인과 피해자는 1970년대 전후에 태어났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것은 1990년대일 것이다. 이 시기는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일본 경제가 장기 정체로 접어든 때다. 특히 1990년대 후반은 아시아 통화 위기와 일본 금융위기 영향도 있어서 ‘취직 빙하기’라고 불렸다. 더구나 이 시대에 고용 규제 완화가 시작돼 전통적인 ‘종신 고용’이 붕괴하기 시작됐다. 이 때문에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직장에 어쩔 수 없이 취업하게 된 사람들이 증가했다.

고용 환경 악화와 사회의 쇠약은 ‘합성의 오류’의 전형적 예다. 개별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인건비를 삭감할 목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늘렸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인생 설계를 할 수 없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 세대는 2차 세계대전 후 첫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인 2차 베이비붐 세대다. 그러나 이들이 결혼과 출산 적령기를 맞이한 1990년대에 3차 베이비붐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인구 감소는 가속화됐다. 개별 기업들의 비정규직 고용 확대라는 합리적 행동이 사회 전체와 맞물리자 사회 전체가 쇠약해지는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합성의 오류를 시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러나 과거 30년 동안 일본 정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마주하지 않았다. 기업이 자기방어를 위해 인건비를 깎는 것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고용 불안정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뒤틀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09년 당시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있을 곳과 역할이 있는 사회’라는 구호를 내걸고 사회 통합 강화를 지향했다. 하지만 이 정권은 단명으로 끝났고 과제는 남겨진 채 그대로 있다.

가족 모델은 일본 보수 정치가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다. 정규직 사원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남성만 일해서 부인과 자녀를 부양하는 ‘일본형’ 가족 모델은 붕괴했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일하는 현실을 떠받칠 사회적 기반인 보육, 교육, 의료, 돌봄 등의 제도는 정비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보수 정치인들 중에는 성별 분업 모델이라는 신화를 유지해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입장에 머무르게 하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 친구인 정신과 의사에게 물어봐도 사회와 연결이 끊긴 사람이 고립감 끝에 범죄로 내달리는 것을 직접적으로 막을 대책은 없다. 교육과 고용 등의 정책을 합쳐 사람들이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실감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는 것은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와사키 사건 직후 유명한 방송인이 텔레비전에 나와 범인에 대해 ‘불량품’이라고 표현하며, 사람을 죽이려면 불량품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우생학적 사상은 사회의 분단을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일본 사회의 통합이 지속될 수 있을지 아닐지 위기 국면이다. 공존, 공생하는 일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논의하는 게 급하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계의 창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