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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1 18:15 수정 : 2019.04.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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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 기후변화를 막는 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시민 불복종 운동임을 깨닫고 지난해부터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가 혼자 시작한 이 운동은 지금 전세계로 확산되는 중이다. 툰베리는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다. 이 우연한 사실에는 뜻밖에도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담겼다. 자폐성 장애를 앓는 이들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사고와 행동 양식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자폐성 장애의 이런 특징은 사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처할 때 견지해야 하는 태도다. 세상에는 기후변화가 과학적 근거를 지닌 현상이 아닌 것처럼 호도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런 정치적 수사들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그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결론에 따라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노력만을 고집스럽게 반복해야 한다.

지난 2월 전세계 많은 청소년들이 시위를 벌여 인류가 처한 생태학적 위험을 무시하는 기성세대에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지지해야 마땅하다. 청소년들이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 시위를 벌인다는 소리는 집어치워야 한다. 등교거부 시위에 대한 가장 저열한 반응은 한 벨기에 정치인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청소년이라면 등교거부 시위에 나설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얌전히 공부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기성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미래를 망치는 법을 배우란 말인가.

그렇다. 청소년들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기후변화를 정치적 수사로 전락시키는 정치인들의 복잡한 현실을 말이다. 그래서 오직 청소년들만이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전세계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한 위원회에서 ‘지구건강식단’을 발표했다. 이는 건강에 좋으면서도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식단으로, 지구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육류와 설탕의 소비는 줄이고, 과일과 채소의 소비를 늘릴 것을 권장한다.

이들은 식량 생산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건강한 식단으로 전환하기, 농업의 우선순위를 건강에 좋은 다양한 농작물 생산 중심으로 바꾸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식량 생산하기, 육지 및 해양에 대한 관리 강화하기, 버려지는 음식물 줄이기 등 다섯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좋다. 하지만 이 전략들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이런 조처를 실행하려면 전세계적으로 힘을 발휘할 만한 강력한 행위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기후변화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다른 문제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난민과 이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나 디지털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행위력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툰베리는 기후변화 방지에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대다수가 페티시즘적 부인의 기제를 따르고 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어른들은 항상 불 끄고, 물 아끼고, 음식 남기지 말라고들 하시잖아요. 언젠가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은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이 그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후변화를 막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어른들은 그러지 않고 있잖아요.” 우리는 사실 인류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결국 “나도 잘 알아. 하지만…”이라는 페티시즘적 부인의 논리를 따르며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일을 실행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이들은 청소년들뿐이다. 지금 ‘복잡한 현실’로 여겨지는 것들은 실은 임금님의 새 옷과 다를 바 없다. 청소년들은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우리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슬라보이 지제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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