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중·참의원 양쪽 모두에서 개헌세력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게 된 정치 상황에서 일본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의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 예상된다. 한편 천황(일왕)이 생전퇴위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면서 천황제 개혁 역시 정치 일정에 오르고 있다. 전후 70여년이 지난 현재 일본의 정치체제가 큰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유럽혁명의 성찰>이라는 책에서 자원 배분을 둘러싼 ‘통상의 정치’와 정치체제 자체의 존재 양식을 다투는 ‘헌법정치’를 구별했다. 민주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시기에는 헌법정치가 활성화되지만, 일단 헌법체제가 확립되면 통상의 정치로 이행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예로 보자면, 1960년대 안보투쟁 이후 자민당이 개헌을 사실상 단념한 뒤로 통상의 정치가 전면화되어 역대 자민당 정권은 통치 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자주헌법 제정이라는 ‘집요저음’(執拗低音, 한 번 제시된 테마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뜻)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베 정권 자체가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얼버무리기 위해 헌법정치를 전면에 내놓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천황의 문제제기에 의해 헌법정치가 아베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근대국가의 군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해 19세기 영국 저널리스트 월터 배젓이 쓴 <영국헌정론>이라는 고전이 있다. 배젓은 통치기구를 ‘존엄적 부분’과 ‘기능적 부분’으로 양분하고 군주제가 전자, 의회와 내각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입헌군주제에 있어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의례적 존재가 됐지만, 이는 결코 소극적인 게 아니라 정치체제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천황제도 존엄적 부분이지만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한 영국의 군주제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독일 군주제를 모방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절대군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붕괴됐다. 이후 포츠담 선언, 일본국헌법 제정 등의 정치적 압력 속에서 천황제는 국가의 상징으로 존속을 허락받았다. 따라서 천황이 상징이 되는 국가의 모습은 이런 정치문서가 보여주는 평화적인 국민국가로서의 일본이다. 이를 이해한 현재 천황은 특히 전쟁의 기억이 옅어지는 시류에 항거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전후 일본이 가져야 하는 정신의 존재 양식을 국민들에게 역설해왔다. 이번 메시지를 통해 (일왕은) 천황의 자리에 있는 이는 항상 주체적으로 그런 의미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보여줬다. 일본엔 자민당 헌법 초안(2012년 발표)에 대표되어 있는 권위주의와 절대군주제를 지향하는 기묘한 자장이 있다. 이 자력에 대항해 통상의 입헌군주제를 지키기 위해선 군주 자신이 어떤 의미의 정치적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의석 분포로 인해 개헌 발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져, 헌법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헌법 논의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긴급사태 조항 등 여당 쪽에서 내놓은 개헌 과제는 ‘미끼’로서, 헌법 개정이라는 모양을 만들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헌법 논의는 패전과 전후 개혁의 자리매김, 또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에 대한 역사적·사상적 논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번 천황의 문제제기는 그런 헌법 논의를 시작하는 입구가 될지도 모른다. 천황이 상징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헌법 제1장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게 좋다. 이 논의가 진전된다면, 필연적으로 전후 일본에서 천황제가 유지된 역사적 맥락에 눈을 돌려야 하며, 그렇게 되면 제1장의 ‘천황’, 2장의 ‘전쟁의 포기’가 왜 헌법의 모두 부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깊어지게 될 것이다. 전쟁을 부정한 평화국가이기 때문에 더욱, 국제사회가 천황제의 존속을 승인한 역사적 경위를 무시할 순 없는 일이다.
칼럼 |
[세계의 창] 전후 일본 정치체제의 동요 / 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중·참의원 양쪽 모두에서 개헌세력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게 된 정치 상황에서 일본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의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 예상된다. 한편 천황(일왕)이 생전퇴위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면서 천황제 개혁 역시 정치 일정에 오르고 있다. 전후 70여년이 지난 현재 일본의 정치체제가 큰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유럽혁명의 성찰>이라는 책에서 자원 배분을 둘러싼 ‘통상의 정치’와 정치체제 자체의 존재 양식을 다투는 ‘헌법정치’를 구별했다. 민주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시기에는 헌법정치가 활성화되지만, 일단 헌법체제가 확립되면 통상의 정치로 이행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예로 보자면, 1960년대 안보투쟁 이후 자민당이 개헌을 사실상 단념한 뒤로 통상의 정치가 전면화되어 역대 자민당 정권은 통치 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자주헌법 제정이라는 ‘집요저음’(執拗低音, 한 번 제시된 테마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뜻)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베 정권 자체가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얼버무리기 위해 헌법정치를 전면에 내놓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천황의 문제제기에 의해 헌법정치가 아베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근대국가의 군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해 19세기 영국 저널리스트 월터 배젓이 쓴 <영국헌정론>이라는 고전이 있다. 배젓은 통치기구를 ‘존엄적 부분’과 ‘기능적 부분’으로 양분하고 군주제가 전자, 의회와 내각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입헌군주제에 있어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의례적 존재가 됐지만, 이는 결코 소극적인 게 아니라 정치체제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천황제도 존엄적 부분이지만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한 영국의 군주제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독일 군주제를 모방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절대군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붕괴됐다. 이후 포츠담 선언, 일본국헌법 제정 등의 정치적 압력 속에서 천황제는 국가의 상징으로 존속을 허락받았다. 따라서 천황이 상징이 되는 국가의 모습은 이런 정치문서가 보여주는 평화적인 국민국가로서의 일본이다. 이를 이해한 현재 천황은 특히 전쟁의 기억이 옅어지는 시류에 항거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전후 일본이 가져야 하는 정신의 존재 양식을 국민들에게 역설해왔다. 이번 메시지를 통해 (일왕은) 천황의 자리에 있는 이는 항상 주체적으로 그런 의미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보여줬다. 일본엔 자민당 헌법 초안(2012년 발표)에 대표되어 있는 권위주의와 절대군주제를 지향하는 기묘한 자장이 있다. 이 자력에 대항해 통상의 입헌군주제를 지키기 위해선 군주 자신이 어떤 의미의 정치적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의석 분포로 인해 개헌 발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져, 헌법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헌법 논의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긴급사태 조항 등 여당 쪽에서 내놓은 개헌 과제는 ‘미끼’로서, 헌법 개정이라는 모양을 만들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헌법 논의는 패전과 전후 개혁의 자리매김, 또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에 대한 역사적·사상적 논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번 천황의 문제제기는 그런 헌법 논의를 시작하는 입구가 될지도 모른다. 천황이 상징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헌법 제1장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게 좋다. 이 논의가 진전된다면, 필연적으로 전후 일본에서 천황제가 유지된 역사적 맥락에 눈을 돌려야 하며, 그렇게 되면 제1장의 ‘천황’, 2장의 ‘전쟁의 포기’가 왜 헌법의 모두 부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깊어지게 될 것이다. 전쟁을 부정한 평화국가이기 때문에 더욱, 국제사회가 천황제의 존속을 승인한 역사적 경위를 무시할 순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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