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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5 19:49 수정 : 2016.05.15 19:49


북한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총 6만자 되는 연설에서 통일과 남북관계에만 거의 1만자를 할애했다. 그는 “북과 남으로 갈라져 아직까지도 서로 반목하며 대결하는 것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스스로 가로막고 외세에 어부지리를 주는 자멸행위”라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을 호소했다. 한국 정부나 언론, 국민들의 반응은 쌀쌀했다. 그에 앞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당장 남한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야단법석이어도 정작 남한 국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김정은은 남북이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남북이 화해하고 신뢰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전제라고 했지만, 이제 불신의 골은 너무 깊어 남북관계를 헤어나오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수렁에 빠뜨린 것 같다. 무엇이 남북관계를 이 지경으로 몰아간 것일까?

남북관계는 국제적 분열과 내쟁(內爭)적 분열의 상호작용 속에 생성됐다. 애초 태어날 때부터 상호공존의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 상대를 자기 방식으로 정복하려 하기만 했다. 한국전쟁은 이 관계를 구조적으로 고착시켰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세상 어디에도 한반도처럼 철저히 분열되고 봉쇄된 지역이 없다고 했다. 그 원동력은 바로 남과 북의 각자 정치에 있다 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은 비록 모두 통일을 지고무상의 목표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상이지 현실은 아닌 것 같다. 현실에서 지고무상의 가치목표는 역시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국가이익이다. 남북관계는 이 국내정치에 ‘자양분’을 제공하여 왔다.

새뮤얼 헌팅턴은 전후 개발도상국들은 현대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집권 정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남북한은 거기에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어 더더욱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고 이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 바로 남북의 적대적 관계라 해야 할 것이다. 1950년대 남북한을 뒤흔든 박헌영 사건이나 조봉암 사건 등 수많은 정적 숙청 사건들이 바로 남북대결에서 그 빌미를 찾았다. 한국에 들어선 강력한 군사정권과 북한에 구축된 유일체제 모두 남북경쟁과 대결에 힘입은 바 크다. ‘7·4 남북공동성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도, 한국의 ‘유신체제’와 북한의 ‘유일체제’를 태동시킨 계기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는 남북의 국내정치에 시의적절하게 작용을 하거나 이용되어 왔고, 그에 힘입은 남북정치는 다시 남북관계에 반작용하며 남북관계의 역사를 엮어 온 것이다. 그 결과로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에 대한 ‘숙청’이 이뤄졌다. 북한은 철저히 ‘악마화’됐고 남한 국민의 혐오 대상이 된 것 같다. 북한은 어떨까. 남북관계가 악화될수록 내부 응집력이 강화된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어온 지난 8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거침없이 해왔다. 김정은 정권 초기 전국에 개발구를 세우며 개혁개방 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던 북한이 이제 막가파식으로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 데는, 남북관계도 한몫했다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한국은 물샐틈없는 봉쇄로 북한을 고갈시켜 북한의 투항이나 붕괴를 이끌어내려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공들여온 국내정치가 ‘천시지리인화’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한국 정치의 태생적 희망을 이루려는 것이 아닐까. 북한 정치 역시 상대방 정복을 태생적 목표로 하고 있다. 적어도 정복당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결국 남과 북의 국내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국내정치 수요에 따라 계속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를 근원적으로 개선하려면 남북 모두 상응한 국내정치에 변화를 불러와야 한다. 거대한 용기와 대승적 안목, 고도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선 이제 말도 꺼내기 두려운 ‘햇볕정책’이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다. 그것은 필경 남북관계를 새롭게 태생시키려 한 위대한 시도였던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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