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1 19:07
수정 : 2019.12.12 02:37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선거의 해를 앞두고 또다시 청년정치론이 등장했다. 많은 정치인과 언론 칼럼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보니 대한민국 정치가 젊어져야 하고, 청년들이 대거 공천되어야 한다는 데 대한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정당들은 총선 준비체제에 돌입하면서 젊고 새로운 얼굴들을 인재로 영입하고 총선기획단 차원에서 역할을 주고 있으며, 2030 후보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공천 제도와 선거 지원 방침 등을 다듬고 있다. 그러나 21대 총선 결과 지난 선거들과 비교해 유의미하게 더 많은 청년이 당선될 수 있을지 아직은 회의적이다. 젊은 인물들을 당선권이 아닌 곳에서 가시화되게 함으로써 이미지만 챙겨가는 ‘청년팔이’를 최근 두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미 목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청년정치와 세대교체 담론은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정작 공천 과정에서 청년들은 험지로 여겨지는 지역구에 배정되거나 낙선권 비례대표 순번을 받고 낙선했다. 8년 전, 4년 전의 청년 정치인 대부분은 지금 정치권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공천 과정에서 각 정당은 매우 ‘합리적인’ 변명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젊은 후보를 지역구에 내세우면 당선권인 지역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그렇다고 비례 순번을 잔뜩 몰아주기에는 교육, 주거, 여성, 경제, 환경, 혁신, 장애, 노동 등 다양한 의제 범주가 각각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청년에게 당선권 한두 자리를 배정하는 것조차 과감한 결단이라는 논리다. 이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젊다고 해서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약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전제이며, 오히려 그것이 한국 정치의 고령화를 추동하고 있으므로 전제의 존재부터 문제로 삼아야 한다. 또한 청년 후보는 왜 청년 의제에만 배치되어야 하는가? 아무도 50대 정치인에게 50대 문제만 다루라고 하지 않는다. 왜 50대 이상의 기성 정치인들은 수많은 의제 영역에 배치하면서 청년에게는 청년 몫만을 배분하는 게 당연한가? 청년들에게 허락된 한두 자리를 놓고 청년들끼리 싸우게 하는, 이 비겁한 게임의 룰부터 부숴야 한다.
젊은 정치인을 모조리 ‘청년 바구니’ 안으로 몰아넣는 한 청년정치도 세대교체도 시작되지 않는다. 청년들에게서 ‘청년’이라는 등딱지를 떼어야 한다. 다양한 의제를 대표하는 비례 자리에, 또 지역구에서 공천될 후보들의 명단에서 그동안 쉽게 보기 힘들었던 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에게 특혜를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교육 문제를 놓고, 주거·부동산 문제를 놓고, 또 지역의 문제를 놓고, 누가 더 평범한 시민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지, 누가 기득권 세력 간의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할 수 있는지, 각자가 몇살인지를 떠나서 겨룰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국회가 젊고 다양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청년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청년들의 정치 진출을 위해서는 ‘청년 비례’라는 유사할당제를 비롯한 ‘청년 바구니’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청년 바구니가 아닌 다른 바구니들에서 젊은 정치인이 공천되고 당선까지 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 환경의 변화를 함께 더 강하게 말해야 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할당제나 가산점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청년들이 갖추고 있기 어려운 ‘스펙’이 선출직 대표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너무 강조되고 있었다는 점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정치 영역에서의 허울 좋은 능력주의가 결국 기득권 정치인과 기득권 그 자체의 재생산에 기여해왔음을, 실제 시민들의 삶을 선출된 자들이 적절하게 대표하지 못하고 괴리되는 상황에 이르게 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능력’의 정의를 바꿀 때가 됐다. 시민의 삶을 잘 정치화하는 능력, 그 능력을 젊은이들은 이미 갖추고 있다.
※문화연구자로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는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이 12일치 지면부터 ’공감세상’ 새 필자로 합류합니다. 애독을 바랍니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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