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7 18:19
수정 : 2019.11.28 09:36
손아람 ㅣ 작가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 택시의 연 수송 인원은 크게 줄었다. 반면 택시업계에 뛰어든 퇴직자는 늘어나 면허 거래 가격은 거꾸로 치솟았다. 면허 위조, 미터기 조작, 강력범죄가 횡행했다. 비슷한 일이 1930년대 공황기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1931년 뉴욕시의 택시는 2만1천대로 지금의 두배에 이르렀다. 전체 차량 수는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던 때이니 초과 공급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택시기사의 노동 여건과 교통체증이 악화하고, 요금 사기와 범죄 등으로 승객 안전이 위협받았다. 뉴욕을 시작으로 전세계로 여객 운송 규제가 확산된 배경이다.
1980년대에 세계 각국에서 여객 운송 규제 철폐 실험이 이뤄졌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이 앞장섰다. 규제 철폐의 즉각적인 효과는 택시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당연히 기사 수입은 줄었고 서비스와 차량의 질적 수준이 떨어졌다. 개인 차량과 영세 회사가 시장에서 이탈했고 버틸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줄어든 이윤을 요금 인상으로 만회했다. 결과적으로 이미 확인된 문제였던 교통체증, 서비스 수준 및 택시기사 노동 여건 악화는 그대로 나타난 반면, 기대했던 시장 경쟁에 따른 요금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장 실패를 받아들인 각국 정부는 규제를 되살렸다.
여객운송 규제는 새롭게 등장한 차량 공유 산업에 다시 도전받고 있다. 선발 주자였던 우버에 규제의 예외를 허용해준 도시들은 예외 없이 부작용에 또 한번 시달렸다. 특히 우버가 택시를 수적으로 압도하고 시장을 집어삼킨 뉴욕에서는 부작용은 과거와 같았던 반면, 영업기밀이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 평균 요금은 택시보다 오히려 비싸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승객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요금을 차등 적용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단거리 승객이 우리 돈 1500만원 이상의 요금을 청구받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논란이 확산되자, 우버가 프로그램 오류였던 것 같다면서 뒤늦게 요금을 환불해준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자연스럽게 질문들이 뒤따른다. 정말로 오류였나? 오류라면 어떤 오류였나? 왜 그런 오류가 발생하나? 우버의 요금은 정확히 어떻게 결정되나? 누구도 이 질문들에 답을 얻지 못했다. 여객 운송 규제를 받지 않는 우버는 요금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그 방식을 공개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택시기사가 승객의 카드로 1500만원을 긁었다면 변명할 여지 없이 구속됐을 것이다. 한국의 차량 공유 회사들도 우버처럼 인공지능에 의해 수시로 변동하는 탄력 요금제를 도입했고, 이 요금 체계야말로 업계의 대표적인 ‘혁신’이다.
한국은 차량 공유의 도입이 늦었지만 대신 외국의 부작용 사례를 관찰할 시간을 얻었다. 정부 개편안의 핵심은 차량 공유를 허용하되, 운행 총량과 요금 변동 폭을 제한하는 것이다. 알려진 차량 공유의 부작용에 대응하고 교통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보루를 남겨둔 셈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최대로 하려면 운행 대수와 요금을 언제든지 늘릴 수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했던 타다는, 왜 운행 차량 1만대 증차와 요금 인상을 기습 발표하는 것으로 개편안에 맞불을 놓았을까? 개편안이 혁신의 궁극적 목표를 가로막았기 때문은 아닐까?
타다 대표가 기소됐지만 이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차량 공유 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을 키워 운행 대수 총량과 요금을 제한하는 규제를 철폐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혁신을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기술 혁신은 정말로 소비자 편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그것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제를 혁신적으로 무력화하는 기술을 뜻하는가? 제발 그따위 혁신을 혁신해보라는 건 기업에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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