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5 19:56
수정 : 2008.02.2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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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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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베를린영화제에 다녀오는 사이 많은 사건들이 있었나 보다. 숭례문이 불탄 것은 <비비시>, <시엔엔> 등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소영 에스라인’(고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청)과 ‘강부자’(강남땅부자) 얘기는 서울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고소영씨와 강부자씨가 정계에 진출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재산이 많은 게 죄는 아니지 싶어 슬쩍 들여다보니, 많아도 너무 많을뿐더러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불법과 편법 의혹을 받을 만한 이들이 수두룩했고, 게다가 그 내정자들의 해명이란 게 더 볼썽사나웠다. 부자 내각 중에서도 으뜸 ‘땅부자’인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전국 각지에 40여건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유방암 검사를 했는데 암이 아니라는 결과를 보고 남편이 기뻐하며 서초동 오피스텔을 사줬다”, “부동산 산 것을 아직 팔지 않고 있으니 투기가 아니다”라는 식의 해명을 했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소유할 수 없는 절대농지에 대한 투기의혹에 대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부인과 자녀들의 이중국적이 문제가 되고 있는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영주권 갖고 있는 게 무슨 죄냐”는 입장을 밝혔다. 이쯤 되면 해명이 아니라 동문서답에 가까운 코미디라 할 수 있겠다.
가난이 죄가 아닌 것처럼 부자인 것도 죄는 아니다. 단순히 돈이 많거나 부동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투기로 재산을 불려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게다가 “법을 어기지 않았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는 더 큰 문제다. 한 나라의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말고 다른 집을 여러 채 갖고 있거나 땅을 갖고 있다면 응당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 표현했던 기간 동안 많은 공직 후보자들이 그 전력 때문에 물러났다. 그러면서 공직자의 기본 요건으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제 청와대의 주인이 달라졌지만 그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한층 성숙해진 대한민국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에 대한 엄격한 기준으로 다수의 고위 공직자들을 낙마시킨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나마 24일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물러나겠다”며 사퇴했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문제 있는 후보자들의 교체를 시사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론으로 미루어 볼 때 이춘호 후보자 외에 사퇴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장관 자리가 얼마나 더 비어 있게 될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안타까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 장관들이 부동산 정책을 얼마나 잘 운영해 나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국민들의 걱정을 알아주길 바란다. 토지보유세를 높여 투기를 막고 공직자윤리법에 주식처럼 토지도 백지신탁하는 제도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놓는 의견들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게 좋겠다. 집 많이 갖고 있는 게 죄냐고 따지기에 앞서 여전히 집 한 칸 없고 땅 한 평 없는 서민들이 다수인 현실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에게 정부가 필요한 까닭이 아니겠는가.
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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