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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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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속담은 상대의 눈을 가리고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는 모습을 일컫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잘못된 논쟁과 처방은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구도를 따른다. 그리고 대개는 다른 ‘발톱’들을 웅크리고 있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군가산점 부활 시도다. 3% 가산점은 위헌일지라도, 2% 가산점은 위헌이 아니라는 주장 그 자체가 이미 ‘눈 가리고 아웅’이다. 경쟁이 치열한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영점 몇 점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변화된 바 없다. 2006년 7급 공무원 공채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24.7%에 불과했다. 더욱이 국방부가 2006년 행정직 채용시험을 기준으로 2% 가산점을 적용하여 벌인 시뮬레이션 결과, 여성 합격자의 31.9%(7급), 16.4%(9급)가 불합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가산점 적용 합격자를 선발 예정인원의 20%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불합격되는 20%에 대하여는 여전히 차별 문제가 발생한다. 더 본질적인 핵심은 가산점제가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력 문제를 남녀 대결 구도 속에서 은폐하는 ‘나쁜 정치’의 결정판이라는 점에 있다. 1999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을 다시 들추면, “가산점 제도는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 군인을 지원하려 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국가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또는 사회 전체가 나누어야 할 책임을 일부의 타자에게 폭력적으로 전가하려는 사고방식에는 크든 작든 파시즘의 뿌리가 놓여 있다. 가산점제에 대한 찬반 문제는 군복무자 지원 여부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가산점제에 반대하는 쪽도 군복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는 뜻을 같이할 것이다. 다만 보상과 지원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균등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며, 될수록 전체 군복무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할 뿐이다. 현재 복무 중인 군인은 약 50만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공무원 축소 추세를 고려하면, 가산점제는 매년 최대 500명 남짓의 군복무자에게만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극히 제한된 방식에 불과하다. 이러한 미봉책이 군복무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대부분의 군복무자들은 그저 소모적인 논쟁 구도에 상징적으로 동원되며, 대리만족하면 그만인가? ‘여자들도 군대 보내자!’는 광기가 존재하는 마당이니, 다른 군복무자들도 ‘억울하면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고 냉소를 보내면 그만인가? 질문하는 권력이 대답하는 방식도 규정하는 법이다. 누가 논쟁 구도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몇몇 정치인들이 득표 계산에 따라 다시 차려놓은 초라한 밥상에 앉아서 남녀가 서로 먹을 것을 다투는 볼품없는 모양새를 재연하지는 말자. 가산점제 찬반이라는 논쟁의 회로에는 사회적으로 올바른 출구가 없다. 국가는 ‘신성한’ ‘병역 의무’를 강변하지만, 젊은이들 대부분은 군대에 ‘끌려’가 ‘썩어’서 나온다고 느낀다. ‘예비역 장병’들의 분노가 향해야 할 대상은 ‘여성’이 아니다. 국가를 향해 당당하게 다른 방식으로 요구하고 질문을 던지자. 군복무 과정에서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사회적 관계와 기회의 단절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복무제를 다시 꾸리라고. 500명의 선택과 희생을 통해 50만에 대한 책임을 지워버리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라고.정정훈/‘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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