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09 19:06
수정 : 2008.02.0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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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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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알파걸, 골드미스, 줌마렐라, 헤라, 나우족, 아티즌, 나오미족 …. 최근 인터넷과 대중매체에서 유포되고 있는 여성 관련 신조어들이다. ‘새로운’ 여성들을 일컫는 이 말들에서는 꽤나 수상쩍은 기미가 느껴진다. 이 용어들이 가리키는 여성들이 어떤 면에서 새롭다는 건지, 이처럼 새로운 여성들의 등장을 가능케 한 환경의 변화는 무엇이라는 건지?
그러나 특정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을 강조하는 이런 신조어의 지속적인 탄생에서 나는 오히려 ‘이런 용어를 만들 때 사람들이 느끼는 재미가 무엇일까’가 더 궁금하다. ‘된장녀’ 이후로 사람들은 여성과 관련해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인 게 틀림없다. 그 재미의 핵심이 무엇인지, 저 말들의 조성을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에서 질투심 많기로 유명한 헤라가 주로 한 일은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가 탐하는 여성들을 처벌하는 일이었다. 이 여신은 화장품 광고에서 매혹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일단 성공하더니, 주부이면서(Houswives), 고등교육을 받았고(Educated), 인생의 제 2부를 새로 시작하는(Reengaging) 적극적이고 활동적인(Active) 중년의 여성을 대변하게 되었다. 동일한 제목의 책도 나왔다. 이 책은 강력한 소비력과 자녀교육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중년의 주부를 강조한다. 이 여성들이 기업의 마케팅 대상 1순위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골드미스는 ‘시집 못 가서 히스테리나 부리는’ 올드미스를 배경으로 깔고 있으며, 줌마렐라는 아줌마와 신데렐라라는, 그동안 매우 성차별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두 용어의 ‘전복적 전유(?)’이고, 50~60대 이상의 여성을 가리키는 나우족(New Older Women)과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여성들을 가리키는 나오미(Not old image)족에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고 우아하게 산다는 평가가 담겼다. 아티즌은? ‘테크놀로지나 문화와는 무관’하다고 알려진 저 ‘파마머리 뽀글뽀글한’ 아줌마도 얼마든지 네티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다 여성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이게 바로 ‘재미’의 핵심 아닐까?
근대 초기에 새로운 삶을 위해 ‘길 위에 선’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신여성이라고 부른다. 여성의 권리와 의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질문은 사회 구조에 대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관계에 대한 낯선 질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신상품처럼 떠도는 저 허다한 ‘신’ 여성들은 오히려 신여성의 지속적인 등장을 원천봉쇄하고 신여성의 고단한 삶을 조롱한다. ‘여자들이 너무 잘나간다’는 피상적인 소문만 퍼뜨려 결국 퇴행적인 정책에 알리바이만 대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아 참, 알파걸! “배울 만큼 배우고 돈도 벌 만큼 버는 여자들도 남편은 처가에 가서도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지만, 자신은 시댁 가면 기어다니며 걸레질을 한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노비제도에 준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여자가 결혼으로 덕 보는 게 없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러니 현재 한국에서 결혼은 여자가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나은 남자와 하는 것이 균형에 맞다.” 이런 식의 지침으로 가득 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라는 자기 계발서에 어쩔 수 없이 끌린다는 20대 여성들의 처세술이 알파걸의 힘이라면?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며느리들의 명절 후유증 이야기가 무성하다. 새로운 이름을 달게 된 많은 여성들은 이 명절을 어디서 어떻게 보냈을까? 그들은 새로운 명절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김영옥/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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