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1 20:09
수정 : 2008.01.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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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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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총수 소환과 그룹의 명운까지 거론되다 보니, 지난 연말부터 요즘 일간지 지상파 가릴 거 없이 비스듬히 누운 청색 타원형 로고의 클로즈업 샷을 접할 기회가 잦다. 굴지의 세계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로고의 15년 전 얼굴은 이와 사뭇 딴판이었다. 육각형 셋이 포개지며 별 셋을 형상화했고, 기업명은 한자 표기로 붙어 다녔다. 옛 로고를 단 삼성 가전제품의 향수를 음미할 이도 여전히 많을 게다. 로고 변경은 1993년 창립 55돌을 맞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포에 맞춰 단행된 기업 이미지통합(CI) 작업의 일환이다. 치부가 속속 드러나는 요즘 그 실체야 어떻든 삼성은 간결한 청색 타원형 기호로 국제무대에 각인되었다.
브랜드의 진화사는 찾아보면 숱하다. 160년 전통 <시카고트리뷴>은 올 1월 26년간 고집한 제호를 변경했는데 이것이 첫 제호 변경도 아니었다. 한겨레도 민족주의 미학이 진하게 밴 목판양식의 백두산 천지 위에 ‘한겨레신문’을 붓글씨체로 올린 88년 창간 제호 이래, 세 차례 변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세월의 때를 타 소비자에게 어렵사리 각인된 회사 브랜드를 뒤엎는 결단은 내외부의 찬반을 낳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제품의 품질만큼이나 시대정신이 반영된 표정 관리의 중대성 때문에 ‘성형수술’ 쪽에 힘이 실린다. 1977년 뉴욕주의 관광산업 촉진을 위해 제작된 ‘I ♥ NY’ 은 알파벳 셋과 기호 하나가 결합했을 뿐이지만, 폭발적 인기로 숱한 변형을 양산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밀튼 글래이저의 대표작이 되었다. 또 2001년 9·11 테러 직후 뉴욕시민의 단합을 유도한 브랜드 파워의 대표적 실례다. 영국 국립 박물관 테이트는 브랜드 개발 후 입장객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국내 사정에 눈 돌려, 응용을 시도해보자. 공공조형물의 정형성과 간판 문화의 천박성은 곧잘 성토되고 공청회도 열리나 본데, 국정 책임이 거의 일임되다시피 하는 정당과 시민단체의 브랜드 디자인에 관해선 무감각을 넘어 무책임하다 싶게 방관하는 형편이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급조되는 신당들은 대체 언제 착수했는지 자신의 정치적 수준에 걸맞게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로고와 당명을 신속하게 쏟아낸다. 추정컨대 창의적 로고에 투자할 시간은 염두에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 참패한 정당 위주로 검토해보자. 당명과는 달리 대분열 조짐이 예고되는 대통합민주신당은 오렌지와 녹색 물결무늬로 깃발과 태극무늬를 형상화했다. 그 의미는 로고와 당명 사이에 깨알같이 적힌 자기과시형 슬로건 ‘미래를 창조하는’의 시각적 구호인 셈이다. 현재 당의 처지를 볼 때 냉소가 절로 난다. 분당과 제2 창당 사이에서 내홍을 겪는 민노당 로고에 대해서도 쓴 소리. 대선 패인으로 낡은 이념과 패권주의에 따른 노선 갈등이 지목된다. 내용상 그게 전부일 수 있다. 그러나 민노당의 브랜드 마크가 혹 당대 민심에 이반하는 건 아닌지 반성할 때가 됐다. 취지야 전혀 다를 테지만 조선노동당과 3음절씩 겹치는 점도 분단국가의 유권자에겐 조건 없는 거부감을 유발할 소지가 있고, 적청색 물결과 원형이 만든 로고는 머리와 팔로 연대감을 상징한다지만 해설을 읽고도 의아하며, 더욱이 당색인 주황과 적청 로고가 만나면 시각적으로 90년 이전 관공서 도안이 떠오를 뿐이다. 지면상 소화할 수 없지만, 앞가르마 탄 ‘전혀 안 귀여운’ 아이로 버티는 전교조를 비롯해 유력 시민단체들의 구시대적 경직성에 호소한 로고 역시 안쓰러운 수준. 작은 예산 쪼개서 전문가에게 자문했으면 한다. 양질의 내용물이 외면 받는 요인이 때론 한낱 겉포장 탓인 예도 많다. 포장지 교체, 사사롭지만 도움되는 일이다.
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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