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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2 18:46 수정 : 2008.01.02 18:46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야!한국사회

수호지와 열국지 그리고 서유기 같은 몇몇 중국 소설은 10대 때, 마음이 울적하면 종종 집어보던 소설들이었다. 삼국지와 열국지의 주인공들은 결국 모두 죽는다. 초한지도 마찬가지다. 초한지의 한신이 기름 속에서 죽을 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특히 이 한신이라는 인물에게 마음이 끌렸었다. ‘좌파 학자’가 될 것이라는 운명을 그 시절에 이미 예감했던 것일까?

제천대성이 주인공인 서유기에서 그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다. 심지어 손오공을 유혹했던 수많은 ‘잡것’들도 결국 해탈을 얻는다. 이 얘기도 좋았다. 온갖 싸움과 갈등 속에서도 언젠가는 모두 깨달음을 얻고, 우리 모두 부처가 되리라! 왜 불교처럼 논리적이고 지독하게 딱딱한 종교가 오랫동안 민중적 지지를 받았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10대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얘기는 양산박의 108 영웅들의 얘기였다. 이들은 진정 민중들의 영웅이었는데, 민중들의 영웅은 죽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승리하고, 나중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남방무술의 중심지인 오키나와에는 수호지의 임충이 나중에 이곳에 와서 그들에게 무술을 전수하였다는 민담이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는 안 그런가? 민중들의 상상 속에서 이순신은 죽지 않았고, 심지어 연개소문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런 게 원래 민중들의 믿음이다.

2007년, 한국에서 양산박의 영웅들은 이명박 당선인, 박근혜 전 대표, 이회창 후보 같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들 중 누가 나와도 승리할 것이었고, 대선에서 다 나와도 승리했을 것이다. 투표자 65%가 이들을 지지했는데, 셋이 나왔다면 오히려 더 높아졌을 것 같다. “돈이면 다냐?”고 외치던 이회창 후보, “정도가 아니다”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 박근혜 전 대표, 그리고 맹신적 ‘한 방 교도’들의 핍박을 헤치고 결국 승리한 이명박 당선인, 기막히게도 수호지의 민중적 영웅 요소들을 고루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에게 열광하고 박수친 사람들이 한국의 민중이 아닌가?

정치는 결국 이미지의 작용이라고 할지라도, 현재 좌파들의 ‘자칭 영웅’들에게는 서사가 없고, 플롯이 없고, 기승전결이 없고, 이 모든 것에 열광하게 만들어주는 기가 막힌 반전이 없다. ‘영웅의 재림’ 신화 하나에 매달렸던 ‘어게인 2002’나 “통일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는 민노당판 ‘어게인 87’, 이 두 개의 서사에 열광할 민중은 2008년 대한민국에는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도 이명박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의 전투에 손에 땀이 났고, 이회창 후보가 “돈이면 다냐?”고 외칠 때, 감동을 느꼈다. 그럼에도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오히려 내 존재가 내 감정을 배반한 것이다. 아닌가?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극우적 민족패권주의, 중도의 시대착오적 ‘부국강병주의’ 그리고 작은 권력을 탐하는 지독하도록 ‘작은 정치’, 여기에는 민중적 열광의 요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108명의 영웅담은 그리하여 2008년에도 우파들의 몫일 것이다. 이제 ‘고장난 축음기’는 좌파들에게 더욱 적합한 비유일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영화 <스타워즈>에는 ‘다스베이더’의 탄생에 이어 ‘새로운 희망의 등장’이라는 기막힌 반전의 4편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년 초에는 ‘움틀거리는 좌파 버전 양산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작지만 민중적 변화를 기대한다. 한국 민중은 원래 접수하기는 쉽지만 지배하기가 녹록지 않은 사람들이다. 일제 때도 그랬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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