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10 18:06
수정 : 2007.10.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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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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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한 지 오래되었다. 내 소득의 절반 정도는 이 고물 컴퓨터에서 나오지만, 내 컴퓨터는 부팅을 시작해서 첫번째 인터넷 화면을 볼 때까지 10분은 걸리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때도 큰 화면은 1분은 기다려야 한다. 물론 데이터 처리하거나 수치 해석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기는 하는데, 한때 석 대의 컴퓨터를 동시에 사용하고 작은 서버까지 운용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처참하기는 하다. 한마디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요즘 속어로 ‘업글’이 필요한 셈인데, 이미 6개월 전에 ‘핸펀’마저 떠나버린 삶에서 굳이 업글의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이 컴퓨터는 기이한 이유로 최근 보드가 나갔었는데, 벌써 두 번이나 수리를 하면서 쓰고 있다. 그래도 이 컴퓨터로만 벌써 다섯 권의 책을 썼고, 하드디스크에는 300개 이상의 발표된 글이 담겨 있다. 그냥 내치기에는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보통은 아니다.
어느 고등학생과 이 컴퓨터 얘기를 했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그건 ‘밑글’이라고 한심하게 쳐다봤다. 가만 있으면 “그냥 밑글”이란다. 밑글은 ‘다운그레이드’의 속어이고, ‘옆글’은 실패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업그레이드’를 의미한다. 업글, 옆글, 밑글, 이 세 마디는 경제학으로 바라본 인생관과 사실 정확하게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20세기 후반, 경제학은 ‘선택의 과학’ 혹은 ‘양의 학문’과 같은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개인 소득이나 이자율 혹은 거래량과 같은 변수들은 모두 이 세 가지 변화로 포착된다.
생각해 보면, 박정희의 유신경제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업글’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식이든,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상징적 자본’이든, 업글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왔다. 이 시대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 자본’을 최대한 업글하고, 채용 담당자에게 선택되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이 채용 과정이 얼마나 우연적인 요소들의 중첩에 의해서 결정되는지 자신의 ‘스펙’, 즉 공식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넣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많은 청춘들이 알고 있는 걸까?
분명히 국민경제의 스펙, 즉 ‘1인당 국민소득’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상당히 업글되었다. 장비 투입으로 보면,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나라에 8비트인 ‘애플컴퓨터’가 보급되었는데, 그 후 국민의 평균적 장비는 상당히 업글되었다. 개개인의 삶으로 보면 업글인지, 옆글인지는 좀 애매모호하다. 소득의 절대액수가 높아진 반면, 직업의 ‘안정성’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얼마 전 삼성의 중간간부들과 사적으로 담소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 모두 정신적 고통과 함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그들의 불행한 중년에 대해서 토로하며, 나처럼 일찌감치 학위나 받을 걸 잘못했다는 얘기를 했다. 이런, 삼성 정규직들도 이렇게 고통스럽다면 이 국민경제에서 행복한 ‘업글’은 도대체 누구냐? 토호들이냐?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국민경제는 확실히 ‘밑글’이다. 지식을 크게 나, 사회, 인류 그리고 우주에 대한 지식으로 나누어 볼 때, 지금 사람들의 지식은 영어 한 가지만 업글되었고, 나머지는 심각한 밑글 상황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베스트셀러 1위를 했던 나라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지금 한국의 지식은 재테크, 그중에서 금융자산과 부동산 두 가지만 업글되었고, 나머지는 처절하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초에 정부에서 유행했던 말이 ‘삶의 질’이라는 단어였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는데, 도대체 뭐가 업글된 것인가? ‘묻지마 대선’의 대한민국, 영혼들이 집단적으로 안드로메다에서 산책 중인지도 모른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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