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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26 18:12 수정 : 2007.09.26 18:12

정정훈/ ‘공감’ 변호사

야!한국사회

간통죄 폐지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여성단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그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간통죄가 여성 보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며, 오히려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타당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자면, 간통죄 문제의 핵심은 국가 권력과 개인의 경계 문제이며, 법과 도덕의 관계 문제다. 문제를 ‘남성 대 여성’의 관점에서 일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그 핵심에 대한 인식을 흐릴 수 있다.

군복무 가산점제 부활 논쟁이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 구도로 진행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는 그 근본 원인이 군 개혁의 지체, 실질적 보상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여성으로의 부담 전가에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병역법 개정안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 문제를 ‘남성 대 여성’의 대립구도로 바꾸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버리는 ‘나쁜 정치’의 대표적 사례다.

마찬가지로 간통죄를 바라보는 여성단체의 인식도 그 근본 문제와 맞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가정에서의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부장적 국가와 법’을 불러들이는 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윤리 영역에 대한 형법의 적용은 처벌하거나 처벌되는 여성을 비인격적인 객체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간통죄 폐지 여부는 법과 도덕의 관계 문제로부터 접근해야 한다. 몸에 새겨지는 처벌의 효과로서만 사회의 성적 질서와 윤리를 지킬 수 있는가? 다산 정약용은 예(도덕)와 법의 긴장을 강조하며, 형벌의 근본은 삼가고 또 삼가는 데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현대의 법 논리는 이를 ‘형법의 보충성 원칙’으로 확립하고 있다.

간통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결정 과정에서 제시된 두 재판관의 반대 의견은 이 문제를 적절하고도 흥미롭게 지적한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윤리 도덕을 지키는 주요 동기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윤리의식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1990년 재판관 김양균) “간음한 여자를 공개된 장소에서 돌로 치라고 했다는 율법에 대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여 반대한 것은 이 문제가 절도죄에 대한 처벌과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2001년 재판관 권성)

형법의 적용이 어둠속에 돌을 던져 버리는 무책임한 행위가 되지 않으려면, ‘도덕의 형법적 강제’라는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겨야 한다. 무릎으로부터 치마 길이를 재며 호통을 치던 오만한 국가가 가능했던 것도 도덕 문제를 법적인 강제 위에 가볍게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적 판단의 문제를 무분별하게 법적 강제의 문제로 바꾸는 것은 사회의 자유를 질식시킨다. 그리고 오늘의 윤리가 풍부하고 새롭게 규범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불륜’이 많은 이유의 하나가 오히려 간통죄의 존재 때문일 수 있다는 역의 발상도 가능하다. 도덕적 영역에 대한 법의 단죄는 윤리적 죄의식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오늘날 법의 과잉이 윤리의 왜소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시들어가는 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노력이 가정생활 유지에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간통죄의 존속과 적용일 수는 없다. 간통죄를 통해, 법의 과잉으로 윤리의 생기 없이 ‘시들어가는’ 이 사회의 징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법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가정·사랑·성의 문제에 대하여 소통 가능한 윤리적 실천이 시작될 수 있다.


정정훈/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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