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09 17:34
수정 : 2007.08.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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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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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로열’이라는 단어가 있다. 내가 태어난 한국이나, 내가 공부했던 프랑스나, 모두 왕이 없던 나라라서 느낌이 여전히 생경하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대처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딱 요즘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거릿 대처는 노조에 적극 대응을 주문했고, 마치 이랜드 파업이나 고속철도(KTX) 파업과 비슷한 상황이 탄광에서 펼쳐지고 있었는데, 이 시절 엄마를 잃은 한 노동자의 아들이 권투와 발레 사이에서 방황하는 상황을 그린 영화다. 어떻게 남자가 발레를 할 수 있느냐고 고함치는 노동자인 아빠와 형, 그 사이에서 점점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이 가난한 소년의 앞길은 너무 뻔해 보였다. 영화에서는 이 상황을 구원한 것이 ‘로열 발레 아카데미’였고, 소년의 재능과 사랑을 알아본 왕립 아카데미는 소년의 입학을 허락하게 된다. 결국 남성들로 구성된 남자 백조의 호수에서 어른이 된 소년은 무용수로 당당한 도약을 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격스럽다.
‘경제 비타민’이라는 프로를 앞세워 ‘온국민 부자되기’를 주장하는 우리의 공영방송 <한국방송>은 발레를 사랑한 한 소년을 폐광 파업현장에서 구해준 ‘로열’과 정반대에 서 있다. 땅투기로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어느 연예인에게 “투기는 과학이다”라는 듯이 박수를 치던 엠시와 출연진들은 전세계 공영방송 역사에서 자신들이 결정적 오점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영국이나 일본, 프랑스는 물론 심지어 미국 상업방송인 <시비에스>에서도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다.
내가 아는 두 번째 가슴 찡한 ‘로열’의 이야기는 바로 ‘로열 차터’라는 단어다. 공영방송으로서 <비비시>(BBC)는 여왕의 칙서로 출발하게 되었는데, 왕의 명예 위에 세워진 방송국이 바로 세계 최고의 방송국인 <비비시>이다. 명예혁명 위에 세워진 영국 사회답게 이 특별한 공영방송은 바로 ‘로열 차터’라는 여왕의 칙서 위에 세워져 있고, 이것이 영업허가증이라 만약 여왕의 명예에 치명적 누를 끼치는 방송을 하면 칙서가 회수되고, 그래서 방송국은 문을 닫게 된다. 만약 영국에서 ‘경제 비타민’처럼, 혹은 지금의 버라이어티쇼 위주의 방송으로 변질되었다면 벌써 몇년 전에 공영방송은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것이 이 경우 ‘로열’의 의미다.
부동산 투기 하지 말자는 것은 좌파나 우파나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덕목이다. ‘지나친 쇼비니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어느 공영방송이 민영방송과 월드컵 방송을 경쟁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또한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대학 말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전위적이며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와 소설, 그리고 만화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소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우리의 공영방송은 대통령의 권위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이 방송국이 흔들리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무지막지한 ‘땡전 뉴스’도, 지금처럼 파렴치한 ‘경제쇼’의 시대도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한다. 좌파나 우파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명예로운 약속을 만들고, 그 위에 공영방송을 세울 수 있으면 한다. 사장이 일방적으로 “내가 할께”라는 것은 선언이지, 약속이 아니다. 그때야 비로소 국민들이 지갑을 열고 시청료를 인상하게 될 것이다. 비비시 다큐멘터리를 틀어주는 <한국방송>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줄 아는 <한국방송>을 원한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투기가 아니라 ‘명예’이다. 이제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명예헌장’ 위에 공영방송이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제발 <비비시>처럼 국민을 명예롭게 만들어주기 바란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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