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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30 17:36 수정 : 2007.07.30 19:32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야!한국사회

어릴 적 가끔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는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꿈속의 일임에도 그토록 슬펐던 이유는 부모님이 나를 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아동복지법에 따라 만 18살이 되면 아동보호시설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보육원생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해마다 1000명에 가까운 ‘만 18살, 어른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아동보호시설을 떠난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사회적 유기’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100만~500만원 정도의 자립 정착금만이 전재산인 그들의 고단한 삶을 보고 있으려니 오래 잊고 살았던 유년기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돌아보면 ‘버려짐의 공포’는 유년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취업을 앞두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한 20대, 주어진 제 몫의 일을 다하지 못하면 직장에서 떨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가득한 30대 역시 그러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다른 한편에는 자녀 교육에 모든 걸 거는 ‘매니저 엄마’들이 존재한다. 양육의 책임과 의무를 여성 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모성 신화’가 강력하게 지배하는 사회의 한편에는 양육과 보살핌의 가치가 하찮게 취급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이 이상적인 가족의 전형으로 취급되는 ‘정상 가족 신화’, 그리고 공적으로는 양육 문제를 하찮게 취급하면서 사적으로는 여성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오롯이 전가하는 모성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나라마다 영웅 신화가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웅 신화는 모성 신화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자식을 명필로 키워낸 한석봉 어머니의 이야기가, 최근에는 혼혈아를 유명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낸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가, 그리고 허구 차원에서는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에 나오는 엄마들이 한국의 ‘위대한 모성’의 상을 새로운 버전으로 창출해 내고 있다.

아이는 엄마나 부모가 단독으로 키우는 게 아니다. 아이는 매일 만나는 친구와 선생님, 나무와 풀, 동물들, 지역 사회가 협동해서 키워낸다. 양육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친절하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부모의 자녀가, ‘비혼모’의 자녀가, 장애를 가진 자녀들이 한국 땅에서 ‘정상 가족’의 아이들처럼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이민을 결심하는 부모들이 생기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아이 키우는 일을 두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사회에서 태아 인공 유산이 이뤄지고, 태어난 아이를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유기된 아이의 이차적 유기, 곧 그들의 양육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 발생한다.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은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양육 책임을 여성 한 사람에게 지우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철저하게 바꾸지 않으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유기와 학대는 우리 사회를 더욱 깊이 병들게 할 것이다. ‘18살, 어른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처한 삶의 조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가 얼마나 깊이 병들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들의 고단하고 척박한 생존 싸움은 부조리한 한국 사회의 환부를 비춰주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제 양육 문제는 더는 특정한 가정이나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공적인 문제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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