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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3 17:48 수정 : 2007.07.23 17:48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텔레비전에서 전시나 공연 같은 문화 행사를 소개할 때, “아이들과 함께 오면 참 좋을 거 같아요” 식의 관람객 소감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 가끔 어이가 없다. 그 행사가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전혀 아닐 경우에 그러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행사의 내용, 구성, 취향, 진행방식, 어떤 것을 보아도 그 행사는 ‘아이’를 위한 행사가 아니다. 아이들은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이해도 못하며, 그런 행사를 구태여 즐기거나 이해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이해할 수 없어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끌고 다닌다. 혹은 자신들이 즐겁게 관람하고서는 생뚱맞게 “아이들과 함께 오면 참 좋을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런 부모는 아이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아이와 부모는 다른 몸이자 한 몸이다. 아이가 맛있게 잘 먹으면 부모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집안의 가구 배치와 밥상 위의 반찬으로부터 여행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을 아이들 중심으로 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부모는 부모이지 아이가 아니다. 뱃속의 아이가 열 달 뒤에는 별개의 개체가 되고 점차 정신적으로도 독립하여 성인이 되어간다. 부모가 아이와 한 몸이면서 다른 몸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정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부모 자신에게 좋은 것과 아이에게 좋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이가 하는 것은 곧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요즈음 행사나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도, 부모들은 함께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아이만 참여시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즉 아이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는, 그 옆에서 일일이 그 아이가 하는 것을 간섭하거나 그 아이가 제대로 못한다고 판단되면 대신 해주는 것이다. 아이만 참여시킬 양이면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거나, 부모 자신도 해보겠으면 아이와 똑같이 해보거나 하는 것이 옳은데,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이를 부모의 분리불안(?)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되면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제대로 된 체험을 못 해보게 된다.

〈열린 음악회〉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부모와 함께 관람 온 아이들 관객의 표정을 보면, 부모의 이런 착각이 얼마나 아이들을 괴롭게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열린 음악회〉는 세대의 벽을 허물고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의 벽을 허무는 등 ‘열린’ 태도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세심하게 따지고 보면 중장년 중산층의 취향으로 고정되어 있다. 카메라는 ‘열린’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종종 30·40대 부모와 초·중등생 자녀를 함께 비추어준다. 그런데 부모들은 입이 함박만해져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는데, 그 옆에 앉은 아이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는 표정이다.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아이들도 자신처럼 재미있어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정작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니까 봐주는 셈치고 따라나선 것이 분명하다.

이제 방학이 시작되었다. 부모가 아이와 다른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을 점차 떼어 놓으며, 부모 자신은 자신이 즐기고 생각할 거리를 찾아가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바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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