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6.25 17:45 수정 : 2007.06.25 17:45

반이정 /미술평론가

야!한국사회

1919년 건립되어 나치가 정권을 접수한 1933년 폐교 조처된 바우하우스는 독일 바이마르를 출생지로 하는 짧은 생애의 공예건축학교였지만 그 정신적 종착지는 범세계였으며, 현재 진행 중이라 할 만큼 영향력 있는 예술의 국제 기준을 마련했다. 당시 36살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발터 그로피우스의 야심은 바우하우스가 단순한 학교의 기능을 넘어 사회 축소판으로 확장되길 꿈꿨다. 그 형태는 더불어 일하며 배우는 공동체의 성격이었는데, 선생과 학생의 종속적 이분법을 거부하고 명인, 직공, 도제로 직함을 나눴다. 그가 교수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게 한 이유는 그것의 지나친 학구적 느낌 때문이라고 한다. 교수 직함이 풍기는 위계와 형식적 권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했던 모양이다.

국내 학풍에서 교수란 고등교육 기관에서 전문 학술을 연구하며 대학생을 교육 대상으로 삼는 이를 일컫지만, 결정적으로 학내에 자기 방(연구실)을 배당받은 이로 정의된다. 단순히 구분해서 시간강사란 방 없는 이인 것이다. 방 배당 유무는 큰 차이를 만든다고 믿어진다. 연구비 지원, 급여, 신분상 처우 모두에서 강사는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 대학 강사 5년차인 나는 간혹 ‘교수님’이라 잘못 호명될 때가 있다. 나만이 아닐 게다. 교수와 강사를 구분 못하는 학부생이 수업 중 그렇게 부른다. 이를 태연히 받아넘기는 강사도 있겠지만 나는 매번 어색하다. 교수가 아니니 선생님으로 불러달라고 학기 초에 부탁하건만, 이런 양해도 한두 번이다. 교수님 호칭이 입버릇이 된 학생들에게 필사적인 시정 요구를 한들, 뭐 대단한 결백을 입증하거나 엄청난 자기과오를 시인하는 것만 같아 결국 관두게 된다. 드물긴 한데 학과 공식 행사장에서조차 강사들의 직함을 아무개 교수님으로 뽑아 식장 테이블에 비치하는 예도 있다. 비슷한 경력과 나이로 먼저 교수가 된 이가 동료 강사에게 예우를 표하는 형식일 것이다. 이 또한 나는 불편하고 과한 처사라고 본다. 하긴 미국과 홍콩 등에서는 대학 강사와 연구자에게도 교수 호칭이 두루 사용된다고는 한다.

이 모두를 종합하건대 교수란 위치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뾰족한 근거 없이 인품과 지성을 갖춘 집단으로 교수 사회가 지목되는 항간의 분위기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 때문인지 교수 자리 하나 얻고자 어르신 앞에서는 소신도 내팽개치고 굽실대는 참으로 가여운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흔을 목전에 둔 내게 박사과정을 권유하는 분들이 차츰 생긴다. 학위가 임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학문적 열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래 동료 중에 느지막이 박사과정에 합류하는 축도 상당수다. 이참에 내가 교수가 될 요건을 갖췄는지, 혹은 교수 될 필요가 있는지를 살펴볼까 한다. 먼저 강의에는 제법 소질과 흥미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점, 학문을 평생 업으로 삼는 점, 생활리듬에 따라 출퇴근이 상대적으로 보장받는 점 등만 볼 때 내 생활 패턴에 제법 어울리는 직종 같다. 그러나 교수여선 안 될 이유 혹은 되기 힘든 요건은 더 많다. 말로만 전해 듣는 지겨운 교수회의와 행정업무를 인고할 만큼 지구력이 없다. 방학 중 급여 중단에 대한 세간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일 안 했으니 안 줘도 무방’이라는 시장 논리와 내 정서가 우연히 가깝다. 학계가 요구하는 용모와 품행 단정과는 상당히 먼 거리에 나의 튀는 언변과 외모가 자리한다. 결정적으로 위아래 없이 비판을 일삼는 내가 그 사회와 화합할지도 의문이다. 하여 교수 권하는 사회가 주는 거북함의 실체는 교수가 될 수 없는 처지이기보다 동료들의 교수 진급이 신경 쓰이는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럼 문제는 해결됐다. 그런 신경 안 쓰며 살면 된다, 하하하. 가만 … 그나저나 누가 나를 불러나 준댔어?

반이정 /미술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