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18 17:31
수정 : 2007.06.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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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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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얼마 전 육아휴직을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집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도 해소할 겸 육아 정보도 나눌 겸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민들의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그 동호회가 집값 담합을 위한 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오가는 대화의 대체적인 귀결점은 ‘아파트값’이었고, 이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거나 딴죽을 거는 사람은 심하게 매도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 동호회의 주요 관심사가 아파트값 문제에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특정 아파트 입주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관련된 최근 기사나 보도들을 보면 점점 우리의 일상이 부의 소유 정도에 따라 구획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느 아파트에서 인근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자기 아파트를 지나 등교하지 못하도록 담을 세웠다는 기사, 어느 아파트 경비원들이 영구임대아파트 주민 자녀들이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도록 일일이 신원확인을 하거나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 학군 조정을 요청하는 분위기가 포착되었다는 기사들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우리 사회의 계층화와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과 함께 학군 조정을 통해 집값 상승을 도모하는 움직임들은 교육의 측면에서 볼 때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반사회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사는 지역 역시 새로 입주한 아파트 주민들이 초등학교 학군 조정을 둘러싸고 교육 당국, 인근 지역 아파트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어린 자녀가 위험한 찻길을 매일 건너서 통학하는 것은 자녀의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에 학부모라면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양보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면 학군 문제는 신규 아파트 입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 모두의 문제이므로 학부모라는 공통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학군과 연계된 아파트값 문제 때문이었다.
학부모 대표들이 학군 조정 문제를 두고 교육기관을 방문하여 의견을 전달하고 온 뒤 아파트 벽에는 안내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 안내문에는 강조된 글씨체로 이 문제가 ‘집값’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었다. 만약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학군 조정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저학년 아이들만이라도 아파트 인근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조정되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나 그런 명분은 사라진 채 ‘집값’만 표 나게 강조되고 있었다. 만약 아이들이 그 안내문을 읽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른들의 악착같은 재산 증식 노력에 감동했을까, 아니면 어른들의 이기주의를 부끄러워했을까. 부모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몹시 걱정스러웠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떤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가에 따라 친구들을 등급화하고 서로 따로 논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 흔히 듣는 ‘살기 좋은 아파트’, ‘명품 아파트’ 같은 구호는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그 도를 더해가는 이기주의의 이면처럼 느껴진다. 남이야 어떻든지 자기 울타리 안만 잘 가꾸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 세상에서 우리와 아이들의 행복이 과연 보장될까. ‘더불어 숲’을 이루는 삶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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