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0 20:40
수정 : 2006.06.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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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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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지난 4일 경기 평택,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새벽부터 2만명의 군, 경찰, 용역을 동원해 벌인 노무현 정권의 작전은 그들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285만평의 너른 들녘에는 주민의 농사를 방해하기 위한 철조망이 쳐졌고, 수천명의 군인과 경찰이 배치되었다. 평택의 참상은 군병력 출동과 오버랩되면서 예전의 광주까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곤봉과 방패와 군홧발을 동원한 무자비한 폭력이 행해졌다. 유혈참극을 일으킨 것이 내 손으로 뽑은 정권이 맞는지, 노무현 정권인지 노태우 정권인지 헷갈린다는 사람들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인권이 다 잘 지켜지고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왜 국가인권위를 만들었는지 의문이다”라고 할 정도로 인권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1980년대를 살면서 쌓은 몇가지 이력이 착시현상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평검사와의 대화가 열릴 정도로 권력기관의 관료들은 동요하고 긴장했다. 정권 초기 대통령의 언급이 없어도 관료들은 인권문제에 대해 민감한 움직임을 보였다. 김대중 정권 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둘씩 인권을 위한 선물을 꺼내 보기도 하였다. 눈치 빠른 관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을 위해서는 모르지만, 대통령을 위한 인권선물이 더는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제부터였을까. 취임한 다음 불과 석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 발생한 광주 5·18 행사장에서의 대통령 입장 방해사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일부 학생이 5·18 묘역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고, 이 때문에 대통령의 입장이 10분쯤 늦어지자 대통령은 화를 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기념식에서 화난 얼굴로 준비된 원고만 읽고 퇴장해 버렸고, 그 다음날 아침 회의에서는 학생들을 난동세력으로 규정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정권타도 구호를 외치냐고, 있지도 않은 사실까지 왜곡하며 화를 냈다. 대통령의 화는 대규모 검거사태로 이어졌다.
경찰은 물론이고, 군이나 국정원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태도는 일관됐다. 조직 혁신도 잘했고, 일도 열심히 하고, 문제도 없단다. 가는 곳마다 칭찬 일색이다. 대통령 입에서 인권이란 말이 나오는 경우는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할 때 빼곤 없었다. 그의 시각은 헌법(기본권)의 수호자나 국민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권력기관의 사용권자로서 고정되어 있었다. 단호한 대처를 못했다는 꾸중은 있어도 인권을 잘 지키지 않는 데 대한 대통령의 문제제기는 임기 내내 단 한번도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관료들이 긴장할 이유가 없다.
인권은 언급조차 없고, 단호한 대처만 주문한 결과가 바로 평택의 참상이었다. 대통령의 주문에 화답한 경찰은 624명이나 되는 시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 다수의 시민들이 아무런 위법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신체의 자유를 구금당했다. 검찰은 60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김영삼 정권을 끝으로 사라졌던 공안사건에 대한 무더기 구속영장 청구였다. 그러나 결과는 영장기각률 73%라는 형사사법사상 전무후무한 기록만을 남겼다. 평균 영장기각률은 11%다.
지금 평택사태의 후폭풍이 불고 있다. 당장 경찰청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건 맥락이 잘못된 것이다. 마름이 무슨 죈가, 마름더러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지주가 문제지. 그래서 분명히 짚어본다. 평택사태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게 있다. 유혈사태의 책임자는 바로 그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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