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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7 18:31 수정 : 2006.06.09 16:24

홍기빈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경제팀장

야!한국사회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토지 수용 과정에서 군대가 동원되어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진압하였다. 흠결 있는 사유의 소유를 ‘징발’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공익을 위해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두고 벌어지는 ‘수용’이란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사안이다. 이를 두고 군대가 동원되어 주민들을 군사 작전으로 때려잡고서 그들의 사유지를 ‘점령’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마침 지방자치선거가 한창이다. 이 미군기지 이전이야말로 서울 용산과 평택 대추리가 연결되는 수도권 전체의 큰 일감이 아닐 수 없건만, 여야의 후보자들은 모두 용산 빈터에 어떤 것을 지을 것이냐는 이야기뿐 평택 대추리에는 약속한 듯 침묵이다.

이 대추리 사건과 정확한 평행선이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도 보인다. 청사진 제시도, 근거 제시도, 반대자들과의 내실 있는 공청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느덧 정부는 “이제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찬반 여부를 지나 어떤 협상안을 낼 것인지를 고민할 단계가 되었다”고 우기고 있다. 입만 벌리면 자신이야말로 경제통이라고 혹은 1980년대 민족자주운동의 기수였다고 내세우는 여야의 ‘선량’들도 모두 약속한 듯 침묵이다. 그러니 최종 협상안이 나오기로 되어 있는 내년 3월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두 사건은 87년 이후 거의 20년 동안 진행된 이른바 ‘민주화’의 바깥 테두리가 어디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민주화’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의제들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상과 관련된 주제들이니, 이러한 의제들은 한마디로 ‘신의 영역’에 해당한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또 납득하지도 못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디선가 그 방향과 지침이 결정되면 우리의 정부는 그것을 ‘수행’할 뿐이다. 자신 혹은 자신들을 뽑아주기만 하면 마치 세상이라도 들었다 놓을 것처럼 잔뜩 사람들 마음을 부풀려놓았던 ‘개혁’ 세력이라는 이들을 청와대로, 여의도로 보내봐야 이는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국내적 사안’과 ‘국제적 사안’의 차이가 급속히 소멸해 가는 ‘지구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은 국민의 교통 안전을 위해 고속도로에서 이륜차 운행을 금지하고 이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법제화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인이 더 많은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를 즐길 수 있도록 그 법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즉 한때 ‘국제적 사안’으로 머물러 있던 그 ‘신의 영역’이라는 것도 국내적 사안들을 파상적으로 먹어치우며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맞서 한반도에 사는 이들의 의사와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하는 우리의 손발 묶인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선거는 지난 10년간 점점 연예계와 구별할 수 없는 공허한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장으로 전락한 것일까.

지방자치 선거가 다가온다. 투표 않고 놀러 간다는 친구들이 떼로 보인다. 이 지면에 선거 ‘보이콧’을 선동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그 친구들에게 그래도 투표는 하라고 설득할 말이 궁색할 뿐이다. 또 지금 터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대추리에는 함구한 채 그저 무작정 밝은 미래를 들이밀면서 인상 좋게 웃고 있는 후보들의 포스터 앞에, 또 그들 중 하나를 골라 투표로써 충성을 서약하는 게 민주 시민의 도리라는 똑같이 반복되는 설교 앞에서 허탈할 뿐이다. 87년의 그 드높던 ‘민주화’의 열망이 20년 후 삼십 몇 프로의 투표율로 식어버린 현 상황은 분명코 ‘87년 체제’의 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홍기빈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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