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1 18:44
수정 : 2020.01.02 09:40
김광길 ㅣ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20년의 출발이다. 2019년은 평화를 향한 희망과 함께 시작하였다. 이전 해의 남북 간, 북-미 간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평화·번영을 위한 불가역적 단계까지 진전되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협의에서 결실을 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간절한 기대와 다르게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2020년을 낙관하지 못한다. 비핵화 협상이 쉽지 않다. 하지만 평화와 번영을 향한 길은 멈출 수 없으며,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독일에서도 냉전 시기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되는 동방정책은 시작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특히 1970년 3월 동서독 1차 정상회담 이후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서명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는 과정이었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와 동독의 빌리 슈토프 총리의 1차 정상회담이 1970년 3월에 열렸다. 이 회담에서는 다음 회담을 그해 5월에 열기로 한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2차 정상회담도 큰 성과가 없었다. 당시 동서독 정상회담에서는 동독을 별개의 주권국가로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서독에서는 동독을 빨리 승인하라는 주장과, 동독을 승인하는 것은 독일 민족에 대한 반역이라는 주장이 의회 안팎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동서독 간의 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서독은 소련 및 폴란드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서독은 소련과 1970년 8월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동독과 폴란드 사이 당시 국경을 서독도 인정하는 모스크바조약을 체결했다. 동독과 폴란드 국경인 오데르-나이세 강을 서독은 1949년 이래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둘의 국경선을 인정하는 것은 동독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모스크바조약을 통해 서독은 이 국경선을 인정했다. 이어 1970년 12월 폴란드와도 같은 취지의 바르샤바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연히 조약들은 서독에서 반대가 심했고 의회 비준도 쉽지 않았다.
그때 야당인 기민/기사당은 기존의 정책이 유지되어야 한다며 동방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정부로선 의회를 설득할 장치가 필요했다. 이에 서독은 모스크바조약과 바르샤바조약의 서독 의회 비준을 위해서는 서베를린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두 가지를 연계시켰다. 당시 서베를린의 지위는 불안했다. 동독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인 서베를린은 소련이나 동독에는 존재 자체가 불편했다. 소련은 1948년 서베를린과 서독의 출입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봉쇄하였다. 1958년에도 서베를린 위기가 있었다. 1971년 9월 초에 서베를린의 지위를 보장하는 베를린협정이 미·영·프·소 간에 체결되고, 그해 겨울 동서독 간에 통과협정 등이 차례로 체결되었다. 이로써 서독과 서베를린을 오가는 여행자들은 동독 도로상에서 체포되거나 추방되지 않게 되었다.
브란트는 이와 같은 성과로 1971년 12월에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지만, 동방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으로 말미암아 1972년 불신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 불신임 위기를 단 2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모스크바조약 등에 대한 서독 의회의 비준도 이뤄지며 베를린협정은 발효되었다. 하지만 서독의 국론분열은 치유되지 못했고, 1972년 11월 전후 최초의 의회 해산과 총선거라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선거에서 브란트의 사민당은 기존보다 4% 정도의 지지를 더 얻었고, 이에 힘입어 1972년 12월 동서독 간 동등한 선린관계를 바탕으로 평화와 교류를 추진한다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대해서도 당시 야당은 서독 정부가 동독의 불법 정권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했고, 서독의 바이에른 주정부는 동서독 기본조약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의회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비준했고,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과정은 독일의 1968년 혁명과 1970년대 독일 적군파 활동이 보여주듯이 극렬한 내부 대립 속에서 진행되었다.
우리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대립 또한 심하다. 비핵화와 평화·번영을 위한 길도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가야 할 길이다.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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