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11 18:27 수정 : 2019.11.12 02:08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 정부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100대 국정과제로 제시했었다. 그 책자에는 “공공성”이 정확하게 스무번 등장했다. 교육의 공공성, 의료의 공공성, 보육의 공공성 그리고 주거의 공공성을 약속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국공립 요양시설, 공공병원 등 공공보건복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하여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은 국정과제 17번이다. 민간의존형 사회서비스로 일관한 지난 반세기와 달리 국가의 적극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가 출현한 것이었다.

보건의료, (고등)교육, 보육, 장기요양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공급의 특징은 민간의존성과 시장주의에 있다. 정부는 재정과 규제 역할만 하고 직접 생산은 민간에 맡긴다. 공적 재정은 소비자의 서비스 비용 지원을 통해 병원법인, 사립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개인사업자들이 구성하는 사회서비스 민간시장에 투입된다. 시장논리에 기초한 메커니즘에서 얼마나 많은 환자와 학생과 아동과 노인이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소비했느냐에 따라 병원과 학교와 어린이집과 요양시설의 수입은 달라진다. 인구가 많고 구매력이 높은 지역에는 민간사업자들이 몰려 과당경쟁이 펼쳐지고, 인구가 적고 구매력이 없는 지역 주민에게 보건의료와 교육과 보육과 요양서비스 이용은 점점 어려워졌다. 지역 간 격차는 공급만이 아니라 서비스 질에서도 확연해졌다. 시장경쟁으로 서비스 질은 높아지고 재정은 절감된다더니 사회서비스 일선에서는 나날이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의사와 간호사와 교사와 교수와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는 동일한 전문성을 가지고 동일한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고용주 아래서 다른 대우를 받았다. 거대한 사회서비스 시장은 단기간에 공급자는 늘렸을지언정 형평성과 공정성, 공익성 실현에는 실패했다.

사회서비스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약속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는 이미 민간법인과 개인사업자로 꽉 찬 사회서비스시장에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시작했다. 사회서비스공단을 만들겠다는 국정과제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설립하는 공익법인 사회서비스원 계획으로 소박하게 등장했다. 시범사업은 대구, 서울, 경기, 경남에서 출발했다. 서울은 우선 다섯개 자치구에 종합재가센터를 설립하고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를 정규직 월급제 직원으로 채용하여 새로운 팀 단위 재가서비스를 시작했다. 대구는 민간위탁에 맡겨온 노숙인시설, 정신요양시설을 직접 운영하면서 서비스 향상과 장애인 탈시설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경남은 최하위 등급을 받았던 민간위탁 공립요양시설을 직영하면서 장기요양시설 운영모형을 개발하고 있다.

사실 민간기관에서 나온 초기의 반발이 무색하리만큼 현재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공급되는 사회서비스 총량은 미미하다. 영역별로 전체 제공 기관의 1%, 5%. 좀처럼 한자리를 넘지 못하는 공공사회서비스기관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여 편중된 시장의 균형을 잡겠다는 계획은 아무리 기다려도 발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에서는 작지만 혁신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급제 고용으로 수십만명이 양산되어 일하고 있는 재가서비스 영역에 정규직 월급제 고용방식을 선보인 것이다. 공공종합재가센터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임금은 물론 교육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주민센터와 연계하여 지자체로 접수되는 서비스 요구에 바로 응답하는 돌봄서비스 책임공급을 실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던 각종 사회서비스 사업들을 직접 운영하게 되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눈을 뜨고 있다.

사회서비스는 지역민의 일상생활을 지원할 뿐 아니라, 건강과 역량개발과 고용을 제공한다. 촘촘하게 연계된 사회서비스 공급을 통해 지역사회는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에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믿을 수 있고 안전하게 공급하여 지역민의 삶을 지원하는 중추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원은 지방자치단체가 그 책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설립하는 기관이다. “지자체가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기 전에 지역이 사회서비스 역량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국회와 중앙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때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