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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8 17:35 수정 : 2019.08.29 15:05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해 수업에서 학부생들과 진행한 반빈곤 활동가 인터뷰가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란 책으로 출간되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활동가를 인터뷰했던 한 학생이 출판기념회에서 덤덤한 소회를 밝혔다. 책을 전하러 동자동을 다시 찾았는데 활동가의 일상이나 동네 풍경이나 변한 게 없었다며 “시간이 정지된 장소에 와 있는 느낌”을 전했다. 가난을 낭만화할 요량으로 던진 말은 아니었다. “저희는 항상 성장해야 한다, 변해야 한다, 이런 말들을 외부에서 많이 듣잖아요. 성적 안 좋으면 올려야 하고, 실적 안 좋으면 쌓아야 하고. 근데 동자동은 갈 때마다 그 일상이 항상 유지되는 게 신기했어요. (활동가가) 아침마다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소액대출) 출자업무 받고, 인터뷰하다가도 12시가 되면 칼같이 일어나 주민들과 식사하러 가고…. 그 꾸준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형성해서 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가시적이진 않지만.”

학생은 우리가 ‘뭣이 중해서’ 이렇게 바쁜지 되묻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한 대목이 문득 떠올랐다. 자신이 연구했던 원주민 사회를 현대사회와 구분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각각을 “정밀한 시계 같은 ‘차가운’ 사회”와 “증기기관 같은 ‘뜨거운’ 사회”라 이름 지었다. 많은 엔트로피를 만들어내는 ‘뜨거운’ 사회는 사회 갈등과 정치 투쟁, 개인들 간의 심리적 다툼으로 지쳐간다. 무질서를 초래하지 않는 ‘차가운’ 사회는 답보 상태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문화가 정말 답보 상태여서가 아니라, 그런 발전선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 체계 용어로는 측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시사회의 친족, 토템, 신화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토대로 구조주의 연구와 서구 중심성 비판에 획을 그은 이 인류학의 거장조차 한국 청년들에게는 찬밥이었다. 1981년 한국을 방문한 이 노학자를 서울대 일부 학생들은 “지난 얘기”나 떠드는 구닥다리로 취급했다고 한다. 군사독재에 맞서 횃불을 치켜든 ‘뜨거운’ 사회에서 지도상에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보로로족 얘기가 들렸을 리 만무하다.(내가 대학을 다녔던 1990년대 그가 다시 한국을 찾았어도 상황이 별반 달랐을 것 같진 않다.)

나는 민주화를 이끈 ‘386 세대’ 청년들에게 여전히 고마움을 갖고 있다. 어쨌든 사이버공간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여도 불시검문과 고문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뜨거운’ 사회에서 조국의 민주를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만들고 소비하다 정작 제 안의 민주를 돌아볼 시간을 삼켜버린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지금의 대학생들도 위태롭긴 매한가지다. 정보와 경쟁의 과부하가 대다수를 “영구 감전사”(프랑코 베라르디) 상태에 빠뜨린 ‘핫한’ 사회는 일시정지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공정 사회가 내 ‘노오력’을 조롱하고 있다는 분노는 몇분 만에 트위터를 뒤덮고, 며칠 만에 광장의 시위를 촉발한다. 다른 질문을 던질 시간이 없다. 수능으로 되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식의 ‘기회의 평등’ 정도로 공정함이 축소된 건 아닐까? “어느 대학 다녀요?”란 질문에 움츠러드는 빈곤 청년은 그냥 루저에 불과한가? 이 사회는 어쩌다 이 좁디좁은 의미의 ‘공정’을 금과옥조로 떠받들게 되었을까?

청년들의 동태를 제 입맛에 맞게 각색하면서 이편저편 갖다 붙이는 정치권과 미디어의 행태는 위태롭다기보다 절망적이다. 주름진 세상을 평면으로 다림질하다 못해 이제는 반을 뚝 잘라 여당과 야당, 좌파와 우파 중 하나만 답하라고 겁박이다. 모호한 태도를 중죄로 여기면서 신속하고 결연한 입장을 추궁하는 경쟁적 소통문화는 ‘조국’ 대첩은 물론 대일 관계, 홍콩 시위, 인권교육에 이르기까지 온갖 현안을 잠식하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던 그 학생은 찰나일지라도 ‘차가운’ 사회의 풍경을 그려본 것은 아닐까? 기술적·경제적 수준이 낮아도 “각 구성원에게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한번뿐인 삶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 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다른 상상의 조건으로 우리가 사는 방식과 믿고 있는 가치가 가능한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때는 인류학의 초급 상식으로 통용되던 문화상대주의마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불온한 금기어가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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