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교수·독문학 대한민국이 글로벌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케이팝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로 인정받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2019년 펴낸 연구보고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이다. 특히 인구 5천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의 이른바 ‘30-50 클럽’ 선진 7개국 중에서 한국은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평가됐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 그 뒤를 이었고, 프랑스, 미국, 일본은 상위 20%에 속하는 2등급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프랑스는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의 부상, 미국은 우익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등장, 일본은 군국주의자 아베의 장기집권이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결정적인 요인은 2016년 촛불혁명과 대통령 탄핵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입법부인 국회가 탄핵하고,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일련의 민주적 절차는 한국 민주주의를 ‘삼권분립의 살아있는 교본’으로 세계에 각인시킨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최근 홍콩 시위에서도 보듯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하나의 ‘전범’으로서 아시아 민주화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위를 벌이는 아시아 시민들을 볼 때마다 큰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그리 다르지 않다.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이 절정에 이른 무렵 독일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 “이제 미국과 유럽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놀라운 제목의 칼럼이 실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가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찬탄해 마지않는 대한민국이 정작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주적 주권국가로서 동북아에서 합당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전환이 필요하다. 향후 한-미 관계는 일방적 종속관계에서 쌍방적 대등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브루클린에서 월세 114달러 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 10억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는 트럼프의 막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 관계의 실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가장 아픈 대목은 ‘13센트’다. 거기 서려 있는 조롱과 비하와 경멸의 정서가 정작 한국을 향한 미국의 진심인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도 독자노선을 걸어온 독일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슈뢰더 총리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독일의 길’을 천명했고,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유럽의 길’을 선언했다. 이제 우리도 분명하게 ‘한국의 길’을 천명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길은 미국의 길과 다르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 동아시아 평화,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며, 인권과 정의, 연대와 인류애로 나아가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주창했다. 이제 그 나라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미국과 협의하되 우리가 결정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갈등과 마찰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문제아’로 공인된 트럼프의 미국과 아무런 갈등도, 마찰도 없다는 것이야말로 창피스러운 일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반대를 뚫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글로벌 스타 대한민국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미국도 흔들 수 없는 나라’임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동북아 전체가 한국을 중심으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권위와 민주시민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고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면서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 우리가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어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온전히 굴러갈 수 있다. 이것이 지난 2년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소용돌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칼럼 |
[세상읽기] ‘글로벌 스타’ 대한민국의 품격 /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대한민국이 글로벌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케이팝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로 인정받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2019년 펴낸 연구보고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이다. 특히 인구 5천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의 이른바 ‘30-50 클럽’ 선진 7개국 중에서 한국은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평가됐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 그 뒤를 이었고, 프랑스, 미국, 일본은 상위 20%에 속하는 2등급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프랑스는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의 부상, 미국은 우익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등장, 일본은 군국주의자 아베의 장기집권이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결정적인 요인은 2016년 촛불혁명과 대통령 탄핵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입법부인 국회가 탄핵하고,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일련의 민주적 절차는 한국 민주주의를 ‘삼권분립의 살아있는 교본’으로 세계에 각인시킨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최근 홍콩 시위에서도 보듯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하나의 ‘전범’으로서 아시아 민주화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위를 벌이는 아시아 시민들을 볼 때마다 큰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그리 다르지 않다.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이 절정에 이른 무렵 독일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 “이제 미국과 유럽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놀라운 제목의 칼럼이 실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가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찬탄해 마지않는 대한민국이 정작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주적 주권국가로서 동북아에서 합당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전환이 필요하다. 향후 한-미 관계는 일방적 종속관계에서 쌍방적 대등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브루클린에서 월세 114달러 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 10억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는 트럼프의 막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 관계의 실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가장 아픈 대목은 ‘13센트’다. 거기 서려 있는 조롱과 비하와 경멸의 정서가 정작 한국을 향한 미국의 진심인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도 독자노선을 걸어온 독일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슈뢰더 총리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독일의 길’을 천명했고,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유럽의 길’을 선언했다. 이제 우리도 분명하게 ‘한국의 길’을 천명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길은 미국의 길과 다르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 동아시아 평화,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며, 인권과 정의, 연대와 인류애로 나아가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주창했다. 이제 그 나라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미국과 협의하되 우리가 결정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갈등과 마찰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문제아’로 공인된 트럼프의 미국과 아무런 갈등도, 마찰도 없다는 것이야말로 창피스러운 일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반대를 뚫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글로벌 스타 대한민국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미국도 흔들 수 없는 나라’임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동북아 전체가 한국을 중심으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권위와 민주시민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고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면서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 우리가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어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온전히 굴러갈 수 있다. 이것이 지난 2년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소용돌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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