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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2 18:17 수정 : 2019.08.13 13:57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그녀는 티켓 반환과 동시에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너에겐 티켓을 팔지 않겠다.” 뒤이은 손님에게 다시 창구를 열었지만 내게는 열지 않았다. 몇해 전 체코 여행 중 있었던 일이다.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가는 버스표를 사려 했다. 내일 가는 티켓을 구매하려던 것이 오늘 것으로 사버렸다.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잘못한 일은 없었다. 닫힌 티켓박스 앞에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국땅에서 당한 ‘인종차별’은 ‘모멸’이라는 감정을 알게 했다. 선택지 없는 나의 ‘존재’가 차별과 모욕의 근거라는 것, 감당하지 못한 마음의 고통은 몸으로 온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백야의 도시를 떠나기 전 밤마다 뒤척였다.

그때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이었을까.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괴롭힘 등의 금지’ 조항을 읽다 울컥했다. ‘누구든지, 누구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은, 장애를 이유로, 피부색을 이유로 모욕당해서 안 되는 것이잖아. 나는, 내 피부색은 잘못한 게 없었어!’ 건조한 법률 문장에서 위로를 얻었다.

최근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안(이하 성평등 조례) 등에 대한 일부 단체의 발언과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 이들은 성평등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성평등은 “양성을 넘어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문제라 주장하고 있다. 대표 발의한 박아무개 의원을 집요하게 괴롭히는데, 전화와 문자를 통한 막말은 물론이고 박 의원이 다니는 교회에서 ‘성평등 조례 폐지를 위한 구국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과 행동은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경남학생인권조례안’이 상임위에서 부결되었고 6월에는 ‘부천시 문화다양성 조례안’이 철회됐다. 2018년 ‘충남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충남인권조례)는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폐지됐다가 4개월 만에 부활되기도 했다. 여론에 취약한 정치인들에 대한 공격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차별적이다.

2014년 전남대 5·18연구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발표된 ‘모욕과 무시 경험의 차별유형화에 대한 연구: 입법화 가능성을 중심으로’는 “모욕과 무시는 사회적 정의의 위반 형태이며, 자신이 응당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임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부정의 표현이다. 또한 문화적이면서도 제도적인 수준에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거부로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차별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모욕과 무시가 어떻게 차별로 이어지는지 적고 있다. 이들 조례를 폐지하자고 나선 이들은 누군가의 정체성에 대한 무시를 통해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의 기준조차 추락시키는 중이다.

“저는 50대 후반입니다. 사는 동안 한번도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를 티브이 외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럼 도대체 혐오 발언을 할 기회가 언제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시급하다고, 그들의 인권이 얼마나 침해당했다고….” 이들이 박 의원에게 보낸 문자의 일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행정가 조너선 맨은 “모든 제도는 명백히 그렇지 않다고 입증되지 않는 한 당연히 차별적일 거라고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을 당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차별 현실이 쉽게 보이지 않고, 차별당하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모르거나 그렇게 할 처지가 못 되고, 용기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단 한번도 동성애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 누군가는 본 적조차 없는 무시와 경멸이 어느 존재가 겪는 슬픔임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모른들, 혐오한들, 차별한들,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없다. 당신에 대한 차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저희가 뭘 잘못했나요?” 성소수자와 이주민이 예수에게 묻는다면 예수는 무어라 대답하실까. ‘너희의 존재를 삭제하라’ 말씀하실까? ‘문제는 문제로 정의된 너희들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실까? 어쨌든 그러니까, 이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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