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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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발사 위협에도 미국이 움직이지 않자, 잘되면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낼 것이요, 안 된다면 ‘자위 의지’라도 과시한다는 계산으로 북한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골라 종류별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세계의 이목을 다시 끌었다. 그러나 중국까지 가담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력 제재까지 가능한 유엔 헌장 제42조를 명시한 미국과 일본의 초안보다는 약해졌지만, 일체의 미사일 관련 행위와 핵 개발까지 중단하라는 결의안이, 그것도 만장일치로 채택됨으로써 미사일 문제를 현안에 추가시켜 미국의 외교적 양보를 노리는 북한의 ‘선군 외교’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물론 한해 수십 개씩 나오는 안보리 결의안이 모두 즉각적인 유엔 제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핵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필수 의제를 추가시켜 대미 압박 수단과 협상력을 강화하려던 북한은 미사일과 핵 관련 프로그램 일체를 중단하라는 유엔의 압력을 받고 또 이를 거부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만 안게 되었고, 회담 복귀 아니면 대결노선 고수라는 양자택일의 처지로 운신의 폭만 좁아졌다. 게다가 중국마저 북한을 무조건 지지할 수 없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결의안 찬성’을 통해 북한에 보낸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이 회담 복귀의 조건으로 요구해온 금융제재 해제 조처를 미국이 솔선해서 취해줄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국무부 차관보 시절부터 ‘미니 국방부’로 통한 대북 강경파의 대명사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만장일치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또 북한이 결의안 채택 후 45분 만에 이를 거부한 세계기록을 세웠다는 점에서도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북한이 ‘다른 길’을 택할 경우 추가 제재를 논의할 안보리 소집까지 예고했다. 대책 없는 북한 붕괴를 막아야 할 중국으로서는 중재를 계속하겠지만, 미사일 발사 직후 미국으로 넘어간 공은 안보리 결의안으로 다시 북한에게 넘어갔다. 이제 북한은 추가 미사일 발사를 주권 소관으로 항변하기도 어렵다. 국제법상의 주권 이론대로만 세상이 움직인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왜 안보리 결의안의 대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일단 금융제재가 최선책임을 확인한 미국이 먼저 양보할 상황은 아니다. 대북 직접대화 기피가 북한의 핵능력만 키웠다는 미국 국내의 비난 때문에라도 부시 행정부가 직접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북한의 희망과는 달리 워싱턴 강경파에게, 북한과의 대결은 합리적 외교가 아니라 의지와 신념의 전쟁이다. 이처럼 서로 양보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선군 외교는 한반도의 안전은커녕 전쟁위기만 보장할 뿐이다. 북한은 약속 이행의 책임이 분산되는 6자 회담으로는 원하는 결과도 얻지 못하고 미국의 ‘변심’과 선제공격도 막을 수 없다고 우려하지만, 6자 회담이든 양자 회담이든 북한의 ‘선 후퇴’가 북한의 핵 무장을 무작정 방관할 수만은 없는, 그래서 대북 강경책 완화의 명분이 필요한 미국의 후퇴를 유도하는 적극적인 선제 외교가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의 구호와 이론은 넘쳐나지만 북한과 미국의 대결이 끝나기 전에는 일체가 허공에 뜬 구름이다. 북-미 대결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동북아 역학관계가 달라지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조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북-미 대결의 외교적 타결만이 아직 그 밑그림도 못 그리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로 들어서는 유일한 입구다. 한국전쟁 이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최초의 대북 결의안이 통과된 지금, 그 대문을 딸 열쇠는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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