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4 19:07
수정 : 2006.07.0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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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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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 강한 사람,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예의는 도덕적이기보다는 계산적이다. 식당 주인이나 백화점 직원의 지나친 친절이나 일터와 직장에서 상사를 대하는 자세만 계산적인 것은 아니다. 교사에게 학생과 학부모가 보이는 과도한 존경의 표시나 부모나 남편에 대한 아이들과 아내의 존경심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도덕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존경과 무시는 넘쳐나지만, 서로 존중하는 문화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존중을 모르는 존경의 도덕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은유를 반복적으로 세뇌시키는 가정교육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대화가 필요하지만, 존경받고 싶은 부모는 훈계에 익숙하다. 아이들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성장하지만, 부모는 권위를 앞세운다. 아이들은 만남을 통해 자유인으로 성장해야 하지만,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길들이려 한다.
존경의 도덕은 학교 교육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비판 없는 존경의 도덕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잘 길들여진 노예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학생으로 평가되고, 자유인으로 성장하려고 몸부림치는 학생들은 체벌 없이는 교육이 불가능한 문제아로 분류된다. 길들이기는 곧 선별하는 과정이 되고, 존경이란 덕목은 체벌을 통해 강자에게 순종·숭배할 것을 강요한다.
체벌은 신체에 직접적 고통을 주는 벌이다. 체벌을 학업 증진이나 비행을 교정하고자 하는 교육의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체벌은 학습 능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공부 잘하는 학생과 그가 사회에서 누리게 될 권력에 대한 이유 없는 존경심과 열등감을 심어줄 뿐이다. 회초리로 아이들만 길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은 더 쉽게 길들일 수 있다. 체벌은 교육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강자의 무시이며 폭력이다.
최근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초등학생의 뺨을 때리고 책을 던진 교사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한 달 전에는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과도한 체벌에 강하게 항의하는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일이 있었다. 쉽게 무릎을 꿇은 교사의 행동도 놀랍지만, 교육계와 학부모의 반응은 더욱 충격적이다. 교육계는 존경받아야 할 교육자의 권위가 침해되었다고 요란하고, 청주 기계공고 어머니회는 사랑의 매를 들어달라며 회초리를 학교에 전달했다. 진정으로 회초리가 필요한 사람은 서로 존중할 줄 모르고 존경받기만을 원하는 부모와 교사들이 아닌가?
회초리로 길들여진 아이들은 과연 누구를 존경할까? 심심찮게 보도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와 교사,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항상 우선순위에 꼽힌다. 강한 사람, 성공한 사람, 그리고 가까이서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자에 대한 무비판적 존경은 언제나 약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의 무시를 동반한다.
존경의 도덕이 반드시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 존중하는 것이 먼저다. 가까이서 나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한 부모나 내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교사는 존경할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부모와 선생이 아니라 나와 유사한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 회초리에 쉽게 무릎 꿇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사회는 계산에 따른 지배와 복종의 사회다. 자기를 낮출 줄 알지만 비굴하게 자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존중하도록 하는 도덕 교육이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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