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9 18:29
수정 : 2006.06.29 18:29
|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
세상읽기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 가깝게 지내던 리투아니아 출신의 노부인이 별세하였다. 높은 연세에도 대학의 동유럽 역사 강의를 열심히 청강하며 학생들과 잘 어울리던 분이었다. 장례식에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더니 친한 유럽인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흰 상의에 검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상의 색깔이 문제였다. 흰색은 한국에서 상복 색이었기에 일부러 엄선해 입은 터였는데, 친구는 조문객이 왜 경사에나 어울릴 밝은 색 옷을 입었느냐고 물었다. 색깔의 문화적 사회적 코드를 염두에 두지 않아 실수를 한 셈이다. 반면, 조선시대 신부의 결혼 예복인 활옷은 녹색, 붉은색 등으로 화려한 색채감을 과시했고, 그렇기에 구한말에 처음 서양식 결혼식을 접한 한국인들은 웨딩드레스를 보고 신부가 왜 소복 색깔 옷을 입느냐고 대경실색했다.
사회마다 문화마다 색깔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지만, 한 사회에서도 하나의 색깔이 동시에 정반대되는 것을 상징하는 예가 많다. 2002년 월드컵 대회부터는 응원단의 붉은 티셔츠가 한국인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없애 주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태극기에 붉은색이 들어 있는데, 왜 빨강이 금기였을까, 외국인이나 후대인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태극기의 흰색, 파랑, 빨강과(미안! 사괘의 검은색은 잠깐 뺐다) 프랑스 국기의 삼색이 같아서, 이 세 상징색깔로 옷을 해 입은 응원객은 프랑스를 응원한다고도, 한국을 응원한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사회나 세력도 특정 색깔을 독점하거나 이것에 유일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미군의 군복 색깔이 녹색에서 독립전쟁 시기의 청색으로 바뀔 것이라는 최근 보도를 유심히 읽었다. 원래 각국 군복의 색깔은 붉은색, 푸른색 등 다양했는데, 19세기 말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이 황갈색에 가까운 카키색을 처음 사용했고, 20세기 초에 미군도 이 색을 채택했다. 그러다 색깔이 녹색에 더 가까워졌고, 지금은 많은 나라 군대가 군복의 기본색으로 녹색을 애용하고 있다. 그래서 녹색은 국방색이라고도 불렸고 군복 색깔의 대명사가 되었다. 카키나 녹색은 멀리서 보았을 때 주변의 흙색, 나무색과 쉽게 구분되지 않아 잠복이나 위장에 유리하기에 군복 색깔로 채택된 것이다. 녹색을 주조로 한 얼룩무늬는 위장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녹색은 원래 생명의 색이자 자연주의의 색이다. 녹색당이 이 색을 정체성의 상징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군복이 또한 녹색이니, 생명의 색과 전쟁의 색이 같아진 것이다. 전쟁이 생명과 자연 뒤에 숨어 스스로를 위장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이 동시에 전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니, 첩첩이 숨은 아이러니가 몇 겹인가?
녹색을 생명과 연결시킬 것인지 전쟁과 연결시킬 것인지는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 6월은 녹음이 무르익어 생명이 가장 왕성하게 기운을 주장하는 철이지만, 한반도에서는 가장 잔인한 전쟁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소녀들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하는 6·25 노래에 맞추어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같은 녹색이라도 전쟁보다는 평화와 생명, 자연을 의미하는 색이 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생명의 색깔이 전쟁을 위장해주고 인간 사이의 날선 유혈대립이 가능하게 돕는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녹색이 군복 색깔로 남더라도 이 색깔에서 전쟁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만을 떠올릴 수 있게 되기를, 그런 세상이 되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