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2 22:23
수정 : 2006.06.2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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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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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대 4대 문명에서 나타나는 사원 매춘은 여신 숭배의 원시종교에서 교접을 통하여 신성을 경험하게 하는 종교의식의 하나였다. 하지만 접신(接神)의 영매였던 여성 사제는 남신 숭배의 체제에서는 남성 사제에 의해 구원받은 성녀로 재활하거나 혹은 버림받은 탕녀로 배척될 것이 강요된다. 그리고 매춘 혹은 윤락이라는 낙인은 이 탕녀에게 부과된 ‘가장 오래된’ 직업이 되었다.
최근 월드컵 축구의 열풍과 월드컵 성매매의 가십이 뒤섞이는 가운데 성매매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 보고서가 또다시 성매매의 논쟁을 지피고 있다. 이 보고서는,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집창촌은 위축되었으되 성매매의 경로는 더욱 다양해지고 더욱 접근하기 쉽게 되어 성매매 확산이라는 풍선효과만 초래하였을 뿐이라 한다.
실제 이런 실패의 혐의는 이미 간취된 바 있다. 법 시행 뒤 1년 동안 전국 집창촌 업소 수가 36.8%, 종업원 수가 52.3% 감소하였다는 경찰청 통계는 외형적으로는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였으나 실제 이 감소치의 대부분은 법 시행 직후 6개월간의 단속실적이 차지하고 있었다. 입법의 성과가 아니라 집중단속이라는 경찰의지와 경찰력이 만든 업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조차도 입법 효과가 아니라 성매매의 양상과 방법이 바뀌어 경찰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이에 대하여 ‘윤락’을 ‘성매매’라는 성평등한 용어로 바꾸었고 성매매 종사자를 범법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규정한 이 법의 의미를 이렇듯 폄하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법은 성매매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앞세우며 성매매 종사자를 사회적 일탈자 내지는 부적응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자 했다는 점, 법집행 또한 단속위주의 경찰력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 등에서 이미 원초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법은 그 여성들의 인권을 다루기보다는 단속과 갱생·교화를 통해 ‘구원’하는 일에 집중하였고, 성매매 산업에 대한 구조적 혁파보다는 성매매에 관련된 개인의 처벌이나 구제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풍선효과야 어떻든 경찰은 성매매 현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단속성과를 과시하게 되고, 구원의 책무를 맡은 또다른 ‘사제’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포기하는 양상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단속의 틈새에서 혹은 숨바꼭질이 만들어내는 그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그들에 대한 폭행이나 성병감염, 착취 등의 인권침해의 현실이 방치되는 것이다.
결국 이 법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자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신 숭배의 사제 권력이 여성 사제를 처단하였던 구조를 떨쳐버리지 못하였기에 애당초 실패의 의지를 품고 있었던 셈이 된다. 그들의 목소리에 충실하기보다는 도덕주의 혹은 급진주의적 시선으로 그들을 규정하고자 하였고, 그들의 인권을 말하기보다는 윤리의 타락을 걱정하고 가부장적 억압구조만을 염려하였다. 이에 타자화된 그 여성들의 인권은 이 거시적 욕망에 압도되어 버리고 만다.
여기서 ‘좀더 강한 단속이나 남성들의 의식전환이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관료권력이 인권의 요구 앞에서 스스로 행동하도록 만들며 모두가 성평등을 의욕하게 하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자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또다른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하는 법률 재개정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에 대한 선악 판단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성매매에 종사하는 이들의 인권 그 자체가 핵심이 되는 입법의 장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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