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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8 18:16 수정 : 2006.06.18 18:16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세상읽기

월드컵 축제가 한창이다. 토고와의 경기가 있던 날, 코메르츠방크 경기장은 3만이 넘는 한국인 관중으로 메워졌고, 독일의 거리 곳곳에 한국인 관광객과 응원단이 요란하게 존재를 알렸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맥주와 치킨이 예년보다 더 많이 팔리고 너도 나도 빨간 티셔츠와 도깨비 뿔 하나씩은 장만했다. 극성스러운 상업주의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에 귀기울일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 승패를 떠나서 다 같이 즐기는 여유를 누리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경기에서 이기고 나서 독재와 가난에 찌든 토고 국민에게 마음 한구석 연민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과거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다른 나라와의 경기를 중계할 때면 어김없이 체력의 열세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는 헝그리정신과 독기로 버텨냈다면, 이제 개인기의 열세를 자신감과 패기로 극복한다고 하니, 이것도 먹고살 만한 나라는 되었다는 징표처럼 들린다.

그런데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 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만족도가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20년 전보다도 더 낮다는 조사결과가 보도되어 눈길을 끈다. 놀랍지 않은가? 이 정도면 만족하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끝없는 불만은 달리 보자면 우리 사회의 부단한 변화 추구, 그리고 역동성과 그 맥이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현실에 만족하거나 또는 불만족해 하는 정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불만족은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온다. 기대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형성되거나 변화추세의 연속선 위에 형성되기도 하며, 집권한 사람들이 제시한 비전과 약속에 기대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당이었다면 소득격차가 벌어졌다고 해서 지지자들이 한꺼번에 실망하여 돌아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국민들에게 어떤 기대를 심어주면서 집권했는지 돌이켜보면 현재 국민의 불만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답은 쉽게 찾아진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불만은 그래도 이성적이다. 기대가 무너진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를 따질 겨를도 없이 그냥 미워진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못마땅하다. 5·31 지방선거의 민심에 이런 심리상태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식의 불만이 생산적일 리 없다. 내가 하는 건 다 개혁이고 반대하면 기득권자의 저항이라고 몰아붙여서도 안 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정권이 하는 일이니 하나 같이 못쓰겠다는 태도는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월드컵을 통해서 전국민이 반쯤은 축구전문가가 되는 걸 보자. 우리 팀이 어느 부분이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 어느 선수는 뭐가 문제인지, 심지어 누구를 어느 포지션에 배치해야 하는가까지 의견을 달 뿐더러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도 댄다. 상대팀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나서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지금 우리는 축구를 이렇게 분석적으로 본다.

정치와 정책에 대해서도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잘잘못을 따져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은 옳은 판단인데 어디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 축구경기를 볼 때처럼 현실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토론해 보자. 내 불만의 근거가 뭔지, 그것이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타당한 이유인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게 뭐 그런 것까지 요구하느냐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는 정확히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하지 않던가? 과거 독재정권은 우리 국민은 지적 수준이 낮아서 대통령 직선제를 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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