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08 20:53
수정 : 2006.06.0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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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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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난 후 정치판도 어수선하고 유권자들 마음도 개운치 않다. 지방정치에서 단 하나의 정당이 독주한다는, 정치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태가 벌어졌다. 애써 얻은 민주화의 성과를 선거로 모두 까먹었다고 개탄하는 지인도 있었다.
한나라당의 어깨도 무거워졌겠지만, 집권당이면서도 지방에서 견제와 균형의 축 구실을 못하게 된 열린우리당의 처지야말로 개인적 지지 여부를 떠나 보기 딱하다. 사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얼떨결에 거대여당이 되었지만 그 후의 행보는 기대에 못 미쳤다. 가장 큰 문제는 일관성의 결여였다고 본다. 참여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미온적 대응, 이라크 파병, 새만금 공사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강행, 평택 대추리사태를 둘러싼 사려 깊지 못한 대처 등을 통해 정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냈지만, 여당도 이에 대해 정체성에 바탕 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급진적 수사와 보수적 정책’이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목을 끈 것은 다수의 20대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투표했다는 점인데, 어느 정도는 예견했던 결과이다. 청년 실업문제로 상당수 젊은이들이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인 한 분은 치솟는 집값과 청년실업 문제를 두고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향해 가하는 집단테러’라고 표현했다. 젊은 층이라 한들 집권당이 해결전망을 주지 않으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한편 한나라당은 구태의연한 점도 많지만, 합리적인 일부 소장파를 포함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수주의자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들이 당의 쇄신에 성공한다면 개혁에 실패한 개혁정권에 비해 최소한 더 안정적인 정치를 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5·31 선거 결과는 여당에 대한 일부의 반감과 젊은 층의 불안감, 박근혜 대표 피습에 대해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가졌던 경악과 두려움의 표현이다. 그런데 여당은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겸손하게 자성하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열린우리당에 감히 한마디 한다면, 재집권을 위한 정치 승부수에 ‘올인’하지 말고 부동산 문제와 같은 중대현안과 관련해 제대로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과제도 여전히 유효하다. 17대 국회의 임기는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다. 남은 기간 할 일이 왜 없는가. 누가 뭐래도 여전히 국회의 최대 정당이다. 설득력 있는 정책으로 최선을 다하려 하지 않고 정계개편을 하겠으니 봐 달라고 읍소하던 선거 직전 지도부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음을 상기했으면 한다. 유권자는 ‘당신들의 권력’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투표하기 때문이다.
양극화와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 절박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에 기대는 정계개편이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진보의 패러다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끝없는 고속성장만을 지상과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환경을 돌보고 평화를 증진시키고 나눔을 통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나눔은 그 자체가 고귀한 것이고, 정책이라기보다 차라리 삶의 방식이지만, 제대로 나누면 오히려 경제도 더 활성화할 수 있다.
삶은 계속된다. 최고 수준의 공적 행위로서 정치도 계속되어야 한다. 사회적 삶의 유장함을 생각할 때 5·31 선거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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