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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6 21:10 수정 : 2009.02.16 21:10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일본의 실패에 대하여 미국이 연구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똑같은 실수를 하는가?’

최근 <뉴욕 타임스> 기사가 소개한 일본 대장성 관료의 발언이다. 일본은 지난 장기 침체기 동안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남발했지만 결국 천문학적인 부채로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부담만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현재 미국 정부가 일본의 실수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럼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뉴욕 타임스>의 다른 기사가 이에 대한 답을 준다. 이 신문은 일본의 인구 6만의 작은 어촌에 건설한 고속도로, 2차선 우회도로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런 불필요한 토목공사에 일본 정부는 8800조원에 이르는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 모두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밀실에서 관료와 정치인과 건설업자가 모여 경제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는 말했다.

일본의 실패 사례는 우리가 곱씹어볼 점이 많다. 일단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4조원을 투자한다는 ‘4대강 정비사업’이 과연 얼마나 경제를 살리는 효과를 낼지 걱정하게 만든다. 사전 환경성 검토 같은 법적 절차도 무시하고 종합 계획(마스터플랜)도 마련하지 않은 채 착공부터 하는 모습이 일본 사례처럼,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고려에 따른 건 아닌지 걱정하게 만든다. 이 정권이 강조하는 ‘법과 원칙’이 왜 이런 사례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리는지는 또다른 쟁점이다. 지난해에 비해 두배가량 증액된 포항지역 고속도로, 우회도로 건설비용 등 ‘형님 예산’ 4370억원은 일본의 작은 어촌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실패 사례를 떠오르게 한다.

신임 경제정책 수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정책실장으로 환란 책임 5위 인물이라고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가 지목하였다. 강만수 전 장관을 환란 책임 4위로 지목하며, 4위가 5위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일을 개탄했다. 지난 경제위기의 책임자들에게 또다시 우리 운명을 맡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의 반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실패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걸 막으려면 일본 관료와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행했던 행태를 복기하고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 공식 문서에만 나타나는 표면적인 내용이 아닌, 그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이 역사의식을 갖고 재구성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작업에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떠오른다. 박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 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보좌했고 전공도 법경제학이다. 한편으로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금도 보수 진영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중요성’을 얘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 대응의 실패 과정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적임자로 여겨진다. ‘사회적 실천을 위해 학문을 한다’는 박 교수가 이런 ‘백서 만들기’를 한다면 정책 실패만 있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종식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서 만들기’는 시민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과 관료에게서 시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이끌어 내려면 견제력 있는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 정치인과 관료들의 개인 행적을 구체적으로, 공개적으로 기록하고 축적해 나감으로써, 선거나 인사를 할 때 이를 확인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만이 과거 실패의 책임자가 다시 등장해 국가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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