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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5 21:49 수정 : 2008.11.05 21:49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한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정 짓는 정신을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시대정신의 급격한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우리 사회에선 돈벌이 능력, 재테크가 중요한 사회적 평가기준으로 노골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경험해 보지 않았던 위기상황을 통해 생존본능이 새로운 가치관, 시대정신을 정립했던 것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종잣돈 1억 만들기’, 중장년층에게는 노후자금 마련하기가 유행어가 되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대학 사회에서도 벤처기업을 하거나,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연구비를 많이 따와야 능력 있는 교수로 인정받았다. 소위 직접 돈이 되지 않는 분야는 인문학이든 이공계든 고사의 위기를 호소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그 자리를 메워 나갔다. 사회가 점점 자본에 종속되어 가며, 돈이 최고의 가치로 바뀌고 벤처기업 투기 열풍과 부동산 투기 광풍, 펀드 투자 열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10년 만에 경제위기가 다시 몰려오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촉발시킨 세기적인 금융공황이 덮쳐오는 가운데 ‘대운하’, ‘새만금 개발’, ‘과학비즈니스 벨트’ 같은 부동산 투기를 유발시키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택됐다. 이어 공수표 ‘재개발’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수도권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경제위기를 자초해 황금만능의 시대정신을 낳은 장본인들이 10년 만에 그 덕을 본 셈이다.

금융위기가 장기 경기침체로 이어지리라는 우려스러운 진단이 나온다. 미국, 유로존, 중국 등 지구적 차원의 경기불황은 수출 위주의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가 발표한 ‘경제 난국 극복 종합대책’은 부동산 거품을 연장시키는 데 치중하느라 원칙도 철학도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대정신의 또다른 후유증이다. 시대정신의 압권은 재벌 2, 3세들이 불법적인 주가조작으로 검찰에 불려 다니는 천박한 행태였다.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를 겪으며 우리의 시대정신은 어떻게 변할까? 그것은 아마도 위기극복 대책이 얼마나 현명하게 수립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울한 전망이 압도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와 중산층, 서민은 닥쳐오는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하고 있지만, ‘위기는 기회’라며 대기업과 건설족과 1% 부유층을 위한 정책만 쏟아지는 까닭이다.

대통령은 은행과 대기업에 중소기업을 살리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높은 예대율이나 단기 외채에 의지하던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믿을 사람 별로 없다. 게다가 ‘키코’로 멀쩡한 중소기업의 등골을 빼먹던 은행들 아닌가. 아울러 하청업체의 생살여탈권을 손에 쥐고 온갖 불공정한 행태를 보인 대기업이 그러리라고는 더욱 믿기 어렵다. 그들의 전과를 잘 아는 국민에게 대통령의 지시는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독감이 유행하면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노인들이 먼저 걸리듯, 위기상황에서는 취약한 부분이 먼저 노출된다. 우리 사회는 자급률 23%의 식량 문제와 낮은 수준의 기초과학기술 등 취약점이 무수히 많다. 부동산 거품을 유지시키는 건설족 위주의 경제대책에 집착해서는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기왕에 정권을 잡았으니 청와대·한나라당·뉴라이트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고도 답을 찾지 못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문호를 개방하라. 자존심을 따질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생존 문제가 걸려있다. 시대정신은 그에 따라 바뀔 것이다. 이번에는 몸은 힘들어도, 건강한 시대정신이 형성되길 고대한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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