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31 20:41
수정 : 2006.07.3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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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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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
방송에 출연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더니 다음날 한 은행 지점장이 전화를 했다. 해외 근무 경력이 10여 년 된다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점잖고 교양 있는 말투로 내게 한 충고는 한마디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규직들을 모두 비정규직화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연봉계약직이 된 지 오래다. 노동자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업무 수행 능력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라는 것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이 향상되는 ‘휴먼 캐피털’은 노동유연성의 중요한 화두다. 기업이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 선별해서 채용하고(기능 유연성), 필요한 만큼의 인원만 신축적으로 고용하고(수량 유연성), 다양한 임금체계에 맞춰 사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임금 유연성)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직장인들을 1년 단위 연봉계약직, 즉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 경영자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고용계약 형태일 수 있다. 다만 기업의 그러한 행태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다.
비정규직 고용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기업이 노동자를 채용하고 고용하는 유연성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반드시 같이 높아져야만 한다. 선진국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특집으로 보도한 한 일간지는 기사의 제목을 “해고 쉽지만, 재취업 더 쉽다”라고 뽑았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했다.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과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그 처지가 달랐던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동시장 재정지출 비중은 대략 3~4%대인 데 비해 한국은 0.36%(2004년)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과 일본도 우리의 두 배쯤 된다. 인력시장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우리처럼 방치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기업 단위에서 독자적으로 노동자들의 ‘패자부활전’ 시스템을 마련한 ‘유한킴벌리’ 같은 경영이 아직도 많은 시이오(CEO)들에게는 ‘정신 나간 짓’ 정도로 치부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해고 권한만 높여주는 노동유연성은 노동자들의 구매력 저하와 소비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
〈화이트칼라의 위기〉의 저자 질 안드레스키 프레이저의 연구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몰아내면서 그 삶을 파괴한 기업들의 경영이 대부분 개선되지 않았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최고경영자의 소득은 꽤 많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경영전략은 최고경영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유익할 뿐, 해당 기업과 국가 경제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장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은 이러한 기업 행태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조합이 활성화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은행 지점장도 노동자라고 깨닫고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는 것,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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