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9 21:17
수정 : 2006.06.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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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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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취임 발언이 성장과 분배에 관한 해묵은 논쟁에 또 불을 당겼다. 집권당의 ‘우향우’ 신호탄이라는 여론이 나오자 ‘비상등 켜고 직진 중’이라는 아리송한 응답도 있었다. 이 논란은 전환기에 처한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놓고 한국의 보수와 진보 두 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최고 담론투쟁의 지점이다. 여전히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가능하다는 세력과 분배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세력이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성장과 분배가 서로 충돌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보완하는 것인지를 밝혀보려는 사회과학자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지만 딱 부러진 해답은 없다. 강력한 분배장치 없이 경제성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배가 개선된다는 많은 증거가 있는 반면, 분배구조의 개선이 성장을 더욱 촉진한다는 반론도 여전히 강력하다. ‘상충론’과 ‘보완론’으로 갈라진 두 견해는 학문적 검증의 영역이기보다는 성장이 분배를 개선한다고 ‘믿는’ 세력과 분배 없이 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믿는’ 세력들 사이 ‘믿음의 다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최근에 전통적인 상충론과 보완론을 넘어서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눈길을 끈다. 이 주장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높은 공공복지비 지출이 없어도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반대로 높은 복지비 지출이 있어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모순된 주장 같지만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높은 복지비 지출을 유지하건, 아니면 낮게 유지하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이었던 나라가 선진국 서클에서 탈락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높은 복지비 지출, 높은 세율, 그리고 국가의 강력한 복지공급 역할로 상징되는 스웨덴은 1980년대와 90년대 약간의 경기침체가 있었지만 최근까지 여전히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 낮은 복지비 지출, 낮은 세율, 그리고 복지공급에서 국가가 매우 취약한 구실을 하는 미국 역시 세계 최고의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로 여전히 남아 있다. 즉, 복지비를 포함한 공공지출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선진국들은 60년대 이후 최근까지 높은 수준의 지속적인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과정과 방식의 차이다.
복지국가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버클리대학의 노학자 제이미 윌렌스키는 얼마 전 한국에서 고지출 국가인 스웨덴과 저지출 국가인 미국 모두 세계화, 인구 고령화라는 복지축소 압력에서도 나름의 경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논지를 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경제·사회정책의 특징은 다르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평등한 소득분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가족 서비스 정책, 합의적 노사관계가 특징인 반면, 미국은 대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대부분 저임금이고, 유럽과 비교하여 대립적 노사관계를 갖고 있으며,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갈림길에 선 한국 사회가 미국의 축소판을 지향해야 하는가, 아니면 스웨덴의 확대판을 지향해야 하는가? ‘리틀 아메리카’ 모델이 사회분열을 파생시키는 성장전략이라면 ‘빅 스웨덴’ 모델은 사회통합과 함께 가는 성장전략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두 모델 모두 나름으로 좋은 경제적 성과를 유지해 왔고, 현재의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는 양극화, 저출산·고령화의 환경 속에서도 경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사회통합적 성장전략이 누가 보아도 더 바람직한 접근이 될 것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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