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10 18:39 수정 : 2019.12.11 02:39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30일 판문점 북쪽 구역에서 나란히 서 있다. 판문점/로이터 연합뉴스 2019-12-09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30일 판문점 북쪽 구역에서 나란히 서 있다. 판문점/로이터 연합뉴스 2019-12-09

이제 연말이 다가오면서 북-미 협상이 파국으로 가는 절차를 밟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며칠 사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해 “로켓맨”이란 용어를 꺼내들더니, “필요하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위협하자, 북한도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하한 ‘망령 든 늙다리’란 용어를 상기시키며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동안 두 지도자 사이에 남아 있던 조심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잘망스런 인신공격성 발언만 혀끝에 맴도는 형국이 됐다.

북-미가 여기까지 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올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간극을 끝내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워낙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대상과 범위, 방식,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 방안 등 쟁점을 놓고 쉽게 접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입장 차가 컸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평행선만 달린 건 그 바탕에 “굳이 양보하면서까지 합의를 구걸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애초 미국에선 지난해 초 북한이 갑자기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고 나왔을 때 “2016년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에 견디지 못하고 굴복한 것”이라며 환호성을 올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을 별안간 파탄 낸 것도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발가벗고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훨씬 강력해진 건 사실이다. 그 이전 제재가 핵·미사일 관련 기술과 물자의 북한 유입을 막는 데 주로 초점이 맞춰졌다면, 2016년 이후엔 석탄·철광석 등 광물은 물론 석유 거래까지 제한하는 등 일반 민생경제에 타격을 주는 방향으로 질적 전환을 했다.

제재 강화로 북한 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음은 몇몇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의 북한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보면 2017년 -3.5%, 2018년 -4.1%로 2년 연속 후퇴했고, 2000년대 이후 회복세였던 대외무역도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8년엔 대외무역 총액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무역수지 적자도 23억6천만달러로 1990년 이후 최대 규모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2016년 이후 내려진 제재 5건을 해제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고통에 북한이 두 손 들고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다른 문제다. 북한 경제는 기본적으로 폐쇄적인 속성 때문에 외부에 알려진 수치만으로 실제 상황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북한 경제는 공개된 지표와 달리 심각한 위기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는 징후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아직까진 제재의 여파가 몇몇 부문에 국한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점에서 보면 1990년대 말 온 나라가 굶주린 ‘고난의 행군’도 넘긴 북한 체제가 이런 정도의 제재에 굴복할 것이라고 믿는 건 망상에 가까워 보인다.

대북제재는 그 자체로도 중국 변수 때문에 허점이 많다. 제재로 북한을 옥죄려 해도 1400㎞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협조가 없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군사·외교는 물론 무역 분야까지 중국과의 갈등 전선을 서슴없이 확대하는 모순적 태도에선, 북핵 문제가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어디쯤 되는 걸까 궁금증이 인다. 미국이 정말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 혹 해결되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북한의 다음 행보는 연말 소집된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아직 추정의 영역이지만,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전망이 낙관적이진 않다. 다만 한 가지 짚어둘 건, 이번에도 협상이 끝내 좌초한다면 앞으로 당분간 ‘북핵 협상론’이 힘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북핵을 둘러싼 협상 노력은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대 중반 6자회담 합의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또 실패한다면, 누가 감히 그 좌절의 무게를 이겨내고 나서겠다고 할 수 있을까.

박병수 ㅣ 논설위원

suh@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