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04 18:25
수정 : 2018.10.05 11:37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현실 법정의 판결이 여론의 확신과 어긋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미국의 스포츠 스타 오 제이 심프슨이 전처 살인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의심스러운 증거 앞에 피고인한테 유리하게 판단한 판결은 형사법 원칙을 지킨 것으로 봐야 한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원칙을 지킨 판결이 법치와 인권보호를 발전시킨 일은 많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미란다 원칙’이 그 예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납치·강간 혐의로 주 대법원에서까지 중형을 선고받은 에르네스토 미란다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을 고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자, 여론은 ‘대법원이 범죄 예방보다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한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지금 미란다 원칙은 형사절차의 근간이다.
1807년 에런 버 전 미국 부통령의 반역죄 재판에선 압도적인 여론이 버에게 불리했지만,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반발 여론이 들끓고, 존 마셜 대법원장과 버의 인형이 불태워졌다. 한 신문은 “독립적 재판부가 매우 유해한 존재임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마셜 대법원장은 1835년까지 재임하면서 사법부 독립을 다지고 헌법의 권위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 법원이 여론의 질타를 아랑곳하지 않고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압수수색영장을 줄줄이 기각하는 것도 나중에 그런 평가를 받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기여할 대목은 있을 수 있다. 2006년 검찰이 법조브로커 사건으로 구속된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부인 명의 계좌 5년6개월치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포괄적인 계좌추적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포괄적 계좌추적의 잘못된 수사 관행은 그 뒤 크게 바뀌었다.
법원의 잇따른 압수수색영장 기각이 앞으로 영장심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제도 정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검찰은 ‘형식주의’라고 반발하겠지만, 그 자체로는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그 역시 시간·장소·경우가 맞아야 한다. 누가 봐도 ‘제 식구 감싸기’인 잇따른 영장 기각 뒤에 “그동안 압수수색영장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너무 느슨했다”는 ‘반성’이 나오는 것은 보기 민망하다. 그런 반성적 고찰이 왜 하필 ‘방탄 법원’에서 시작돼야 하는가. 재판에서 할 유무죄 판단을 미리 재단해 영장 기각의 사유로 대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낯 두꺼운’ 일 앞에서 사법발전을 논하기는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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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주년 대한민국 법원의 날인 지난 9월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얼굴 탈을 쓰고 수의를 입은 채 두 사람의 구속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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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여론의 법정에선 이미 결론이 내려졌을 수 있다. 재판이 권력과의 거래에 ‘오염’됐을 것이라는 의심은 이제 돌이키기 힘들다. 드러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관련 문건은 대부분 나중의 재판 결과와 일치했다. 재판 개입 없이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행정처는 영험한 예언자다.
뻔한 사실이 그렇게 여론의 법정에 제시됐는데도, ‘의제된 사실’을 앞세운 항변은 계속되고 있다.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주장부터가 ‘눈 감고 아웅’의 현실 호도다. 재판거래를 밝혀내긴 쉽지 않거니와, 적용할 혐의도 마땅치 않을 것이고, 기소해도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일각에선 있는 모양이다. 현실 법정에선 버틸 만한 방어선이다. 하지만 법원의 존립 근거인 국민 신뢰가 걸린 여론의 법정에선 무모한 억지일 뿐이다. 지금은 현실의 법정을 모면하는 데 급급할 때가 아니다. 법원이 여론의 법정에 소추돼 단죄를 앞두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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