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28 17:58
수정 : 2017.06.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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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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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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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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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보도의 욕망과 오만, 사실의 실종
시장지배적 보수 신문을 중심으로 한 한국 언론의 권력화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는 꽤 오래다. 언론이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게을리한 채 정치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요즘 보수신문의 정치 보도는 적지 않은 경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이념적 정파적 반대 입장과 반대 세력을 규합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진보 신문의 정치 보도에선 진보 정권의 가치에 충실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지원하려는 경향이 읽힌다.
신문이 자신들의 주장과 입장, 의견을 다양하게 피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동일한 사안을 놓고 신문들이 사실과 ‘다르게’ ‘틀리게’ 보도하면서 자신들의 보도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오만함에 빠져 있는 점이다. 모든 사회적 공론의 기반이랄 수 있는 사실 확인과 사실관계 검증 작업이 생략된 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면서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소모적 갈등과 분열,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화합과 일치의 길에서 만나지 못한다.
<한겨레>의 정치 보도는 순수한 정의로움이 있어서 좋다. 하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한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런 사례들은 ‘정확한 사실’이야말로 진보, 정의, 민주주의, 권력 감시 등 신문이 추구하는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있어야 함을 재확인시켜준다.
■ ‘사실 아닌 사실’과 ‘경험적 사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남자란 무엇인가> 등의 저작에서 표현한 내용이 부적절한 여성비하 인식을 드러냈다 하여 야당에서 먼저 정치적 문제로 부각시켰고, 언론들도 덩달아 비판하고 확대 보도했다. 한겨레도 비슷한 맥락의 비판적 보도를 했다.
관련 보도들은 안 후보자가 저술한 ‘사실들’을 인용하는 사실보도의 형식을 띠고 있다. 문제가 된 안 후보자의 표현들은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문제가 될 소지는 안고 있지만 그것은 인문학적 텍스트들이다. 따라서 그 글들을 문예적, 인문학적 콘텍스트 안에서 읽으면 별로 문제 삼을 일이 못 된다. 출간 당시 서평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도 정치와 언론은 해당 저작의 일부를 정치적 텍스트로 읽고서 정치적 추문으로 규정했다. 마치 성적 표현이 들어간 그림을 갤러리가 아닌 국회로 들고 와서, 그림 중에서 성적 표현만을 부각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냐고 따지는 식의 광경이 펼쳐졌다. 이것은 한국 정치와 언론의 인문학적 텍스트 읽기 수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와 언론이 안 후보자의 여성관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하려면, 실제로 안 후보자가 남녀문제와 성의식과 관련해서 혹시라도 부도덕한 행위가 있었는지를 취재, 보도했어야 할 것이다. 안 후보자는 그동안 성소수자와 미혼모, 여성 교수들의 인권의 평균 수준을 높이는 데 헌신했고 주위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경험적 사실들’은 ‘사실 아닌 사실’에 밀려 부당하게 외면당했다.
■ 사실관계가 틀린 정의로운 보도?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세미나에서 행한 ‘북 핵동결 땐 한·미 훈련 축소’ 발언에 대해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동맹을 저해하는 성급한 발언’이라고 융단폭격을 가했다. 한겨레는 19일치 1면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 나왔나, 뉴스분석: 문정인 특보 워싱턴 발언’과 20일치 26면, 정의길 선임기자의 칼럼 ‘문정인은 할 수 있는 말을 했을 뿐이다’를 통해 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을 두둔하고 보수 신문의 부정적 보도와 입장을 비판했다. 있을 수 있는 보도 방향이고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런데 20일치 6면 ‘미 한반도 전문가 다수, ‘문정인의 제안(북 핵동결 땐 한·미 훈련 축소)’에 공감’ 기사는 제목과 본문 내용의 사실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기사 내용은 문 특보의 제안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 한-미 동맹을 훼손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재조정 필요성 등을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수’는 아니라는 얘기이다. 기사에서 인용하는 전문가들의 발언도 “한국 쪽이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등의 애매한 부분이 있고, “비판적 입장을 내비친 전문가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라고 하여 문 특보의 발언에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다수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정의로운 보도와 주장이라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관계가 무너지는 순간 사회적 신뢰로부터 멀어진다.
■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안경환 후보자가 ‘불법 혼인신고’ 사건으로 사퇴한 뒤 야당은 이를 기화로 조국 민정수석의 사퇴를 주장했다. 한겨레 사설(6월21일) ‘인사 문제로 민정수석 출석하라는 야당의 과한 주장’의 비판대로, 조 수석 사퇴 주장은 합리적 근거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치 공세로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19일치 5면 기사는 ‘거세지는 ‘조국 책임론’’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안 후보자 사퇴 이후 야당이 조국 수석의 사퇴를 일제히 주장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 정황을 전한 기사 내용에 맞춰 ‘야당에서 ‘조국 책임론’ 분출’ 정도의 제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제목 때문에 마치 한겨레도 조 수석의 사퇴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오해의 소지를 낳았다.
‘김부겸, 부인 재산 거짓기재·6년간 신고누락’(6월12일치 6면) 기사는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 부인 보유 주식 750주(액면가 1만원, 총액 750만원)를 공직자 재산 목록에 신고하지 않아 문제라는 식으로 썼으나, 공직자윤리법상 총액 1천만원 이하 주식은 애초 신고 대상이 아니어서, ‘사실과 다른 보도’가 됐다.(6월15일치 2면, 정정 사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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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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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경구가 있다. 권력을 감시하고자 하는 의욕, 기사를 크게 강조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구체적이고 작은 사실관계를 놓치면, 기사 전체가 ‘악플들’이 들끓는 악마의 소굴로 빨려 들어갈 수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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