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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8 18:31 수정 : 2015.05.28 20:41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강기훈 누명은 정의 부재의 증거…정의와 거리 먼 황교안 총리후보
헷갈려하는 독자 위해 언론이 엄정한 잣대로 정의를 되세워야 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괴이한 일’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만난다.

국가권력이 무고한 청년에게 듣도 보도 못한 엉뚱한 죄목으로 옥살이를 강요했다. 청년은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살았다. 청년이 누명을 벗는 데는 2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20대 청년 강기훈은 어느새 50대 중년을 맞았다. 대법원은 최근 강기훈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역사적 판결이 내리던 날, 정작 강기훈씨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폭력 앞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힌 강씨의 참담한 심경을 어찌 짐작하리오. 다만 그를 응원하는 이들의 소감을 통해 그의 속마음을 어렴풋이 헤아릴 따름이다. “무죄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만 감격스럽기보다는 비통할 뿐이다. 당연한 결과를 얻어내기까지 우리는 치욕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의 감회다.

‘24년 전 청년’ 강기훈은 무죄확정 나흘 만에야 심경을 밝혔다. “나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끝났다. 이제 역사적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때가 됐다. 저를 끝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기를.” 덧붙인 한 구절이 처절하다. “한마디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를 수사했던 검찰은 그가 유서를 쓰지 않은 것을 알고도 진실을 왜곡했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심경은 육성이 아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보낸 전자우편을 통해 전해졌다.

강기훈은 병을 앓고 있다. 간암이다. 풀리지 않는 억울함, 잇따라 부모님을 저세상으로 보낸 자책감, 경제적 궁핍이 그의 몸을 갉아먹었다. 정기검진만 제대로 받았어도 일찍 이상신호를 알아차렸을 텐데, 공사판 막노동을 전전하기도 했던 그의 불안정한 생활은 그런 호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 사건 이후로 난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어. 특히 그 사건이 터진 5월만 되면 몸과 마음이 다 아프다”며 씁쓸해했다.(<한겨레> 김의겸 기자의 칼럼에서)

‘명백한 날조 사건’이라는 점에서 강기훈 사건은 사법 사상 치욕적 기록의 하나로 남게 됐다.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손잡고 한 인간에게 파멸의 길을 강요한 불법이 확인된 마당에 한마디 사과가 없다니 참담할 따름이다. 문득 검사, 판사들의 젊은 시절 가슴속 ‘정의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심오한 ‘정의론’을 펴자는 것은 아니다. ‘상식’을 말할 따름이다. 정의란, 사전의 뜻풀이를 빌리면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아닌가. 적어도 한때는 ‘법의 정신’을 생각하며 법조인을 꿈꾸었을 검사와 판사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한 ‘파렴치집단’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법의 정의’는 엄정함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를 내정하고 임명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장고 끝에 ‘공안 검사’ 출신, 황교안 법무장관을 총리 후보자로 선택했다. ‘국민통합’ 대신 ‘공안총리’를 선택했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여권 일각에서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의 선택은 국민 뜻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정의’를 저버린 셈이다. ‘대통령 정의’의 출발점은 국민을 섬기는 데 있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의 ‘정의감’,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살펴볼 차례다. 총리에게 요구되는 정의의 요체는 대통령에 버금하는 고도의 균형감과 통찰력에 있다. 총리 자리는 문자 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처지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임명권자의 뜻이 국민의 여망에 우선할 수는 없다.

쓸개도 없이, 철학도 없이, 국민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국정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올바른 총리가 될 리 없다. 특히 고도의 균형감각은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발전의 동력을 일구는 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현대사회는 지역과 계층, 세대와 정파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갈등요소를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황 후보자는 적임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총리의 정의’에 어긋나는 황 후보자의 행태와 행적들은 넘친다.

무엇보다, 황 후보자는 대통령 눈치 보기의 달인이라는 점이 걸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법무장관으로서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한 전력은 치명적이다.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선거부정 사건’을 얼버무리려는 행동이었던 터다.

그는 2013년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며 1주일 동안 영장 청구를 막아 수사팀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석연치 않은 동기와 과정을 통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적 취약성뿐만이 아니다. 그의 가치관, 철학의 편향성에서도 황 후보자는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보수적 편향성은 ‘사회통합’을 위협한다. 2007년 샘물교회 신도 2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에 의해 살해된 사건에 대한 그의 견해는 섬뜩하다.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정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 대통령의 생뚱맞은 말은 국민 마음을 다시 한 번 긁어 놓는다. 국회에 보낸 임명동의 요청서에서는, 황 후보자가 ‘국민소통과 사회통합 및 국가 전반의 개혁을 이뤄낼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고 치켜세웠다. 국무회의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부패 청산을 비롯한 정치·사회 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제들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린다. 우리는 사회분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굳건히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황 후보자 국회청문회를 낙관하는 듯하다. 법무장관 임명 과정에서 이미 거친 관문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그 점을 의식해 그를 점찍은 측면도 없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장관과 총리는 다르다. 장관 청문회 때의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된 것도 아니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여야의 주장, 평가는 숱하게 엇갈린다. 그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듯하다. 시민들은 헷갈리고 정치 불신은 날로 치솟는다. 엄정한 ‘정의’의 잣대는 ‘언론 정의’의 출발점이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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