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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6 18:52 수정 : 2015.02.27 02:00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이완구 관련 ‘충청 민심’ 한겨레가 실체 취재했어야
취임 2년 박 대통령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장 중요

박근혜 대통령은 2년 전 ‘행복한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취임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간 데 없다. 박근혜 정권 2년에 대한 평가는 정파와 계층을 넘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적표는 한마디로 ‘낙제’ 수준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5일 ‘4월 총파업’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국민행복은커녕 당장 내일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야권의 비판도 매섭다. 한 의원은 박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총평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진짜 나쁜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대선 공약은 파기됐고 업적은 없이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새누리당 의원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근혜 정부를 질타했다. “정부가 지난 2년간 입만 열면 경제살리기, 경제활성화를 말해왔지만 각종 경제지표 등 나아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비판은 이어진다. “서민들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데도 증세는 없다고 거짓말하거나, 공약을 어겨놓고도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박 대통령의 폐쇄적 용인술도 다시 고난을 맛봤다.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은 ‘구원투수’로 이완구를 선택했다. 감각과 눈치, 정치인이라는 신분과 도지사 경력, ‘강자에 대한 처신법’ 등 강점이 많았다. 국회청문회쯤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가 흠결과 ‘의혹의 백화점’인 것을. 그래도 총리 후보자 이완구의 ‘맷집’은 대단했다. 터져 나오는 의혹과 여론의 질타에 그는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준비된 총리’ ‘자기관리의 달인’이 한낱 허구로 드러났지만 태연하게 시치미 뗐다. 그는 검증의 강을 무사히 건너지 못했다. 그의 용의주도한 ‘자판기 해명’은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그것을 오히려 키울 따름이었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의 ‘용병술’에 비교적 너그러웠던 ‘조중동’조차 비판 대열에 가담했겠는가. 그는 국회 청문회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의혹’을 지닌 총리 후보자로 기록될 법하다.

총리 후보자 이완구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박 대통령의 ‘굳센’ 의지다. 박 대통령은 역시 빗발치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세 번 잇달아 총리 후보자를 퇴짜 맞을 수 없다는 절박함도 한몫했을 터. 이완구 후보자는 마침내 국회 인준 절차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의 인준 과정이 남긴 상처 또한 크다. 청와대 오만과 불통의 고착화, 의회 기능의 무력화, 민주주의 정신의 실종, 정치 불신의 심화 등이 그것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언론기능의 마비 현상’이 드러났다는 점도 적이 충격적이다. 이는 실로 위험한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총리 후보자의 빗나간 언론관이 그대로 묻힐 뻔했다. 박 대통령의 언론 무시 전술도 위험수준을 치닫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중동까지 비판적인 논조를 펼쳤는데도 박 대통령은 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국민들 역시 이 위험한 징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청문회 과정에 정치공학이 동원된 측면도 없지 않다. 여권의 ‘지역 민심’ 전략 앞에서 언론도, 야권도 놀아났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으로 떳떳지 못한 인물을, 국가의 최고위 공직자로 천거할 수는 없는 일. 청문회 막판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충청 민심’ 소동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도 냉철한 것은 아니었다.

‘의혹’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선택은 특정지역 민심 앞에서 미묘하게 흔들릴 수도 있다. 이 미묘한 상황은 또 하나의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 민심에 대한 존중인가, 아니면 모독인가.’ 언론도 이 지점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론의 딜레마는 진지한 취재에 답이 있다.

‘민심은 이완구 총리를 그토록 열망하는가, 그의 숱한 의혹을 감안한 민심인가. 그 민심은 순수하고 자연발생적인가, 지역 민심을 자극하는 플래카드는 누가 걸었는가.’ <한겨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충청 민심’을 등에 업고 ‘이완구 고비’를 넘었다. <한겨레>도 그 들러리 구실에 충실했던 셈이다.

이완구와 함께 ‘2월의 인물’로 꼽힐 인물이 원세훈이다. 이들은 박근혜 시대를 상징하는 ‘열쇳말’로도 꽤 어울린다. 전 국정원장 원세훈은 지난 9일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조직적 대선 운동을 지시한 혐의를 법원이 인정한 터다. 원세훈은 조용히 구속됐지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국정원 스스로 “선거개입은 최고 주권자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위”라고 규정하지 않았던가.(2007년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이라는 보고서에서) 재판부는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대선개입, 곧 ‘부정 선거’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도 큰 상처를 안겨준 셈이다. 정통성 시비를 벌이기에는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겐 국정 통수권자로서 ‘무한책임’이 있다. 적어도 국가기관의 헌법 유린 사건에 대한 반성과 대국민 사과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법의 정의’가 어찌 귀결될지는 아직 모른다. 1심 재판부는 “정치개입이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는 어려운 말로, 선거개입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으로 1심 판결문을 신랄하게 비판한 현직 부장판사는 징계위에 회부돼 ‘정직 2개월’ 처분을 받기도 했다. 대법원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국정원 댓글 사건 기소과정에서, 여권 인사들이 야권을 향해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냐’며 되레 큰소리치던 모습이 쓴웃음을 자아낸다.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건은 묻히게 마련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언론의 무관심’ 탓에 비교적 부드럽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한마디는 ‘진정성’이다. 소통은 아름다운 말이나 논리의 산물이 아니다.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없다. 눈물도 눈물 나름이다. 더듬거리는 말, 아니 한마디 말 없이도 소통은 이뤄질 수 있다. 최고의 말은 이심전심의 말이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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