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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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활약은 신뢰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
의제설정 미흡, 여건만 탓할 건가?
시민편집인의 눈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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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턴 같은 에디터가 <비비시> 카메라 앞에 서면 런던 금융가, 특히 지금과 같은 위기 때에는 세계 금융시장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19일치 <업저버>를 보면, 금융가에 미운털이 박힌 페스턴에 대해 보수당이 대신 고발장을 접수했다. 금융시장을 교란했다는 명분이지만, 페스턴에게 정보를 흘리는 사람을 밝혀내 노동당 정부의 스캔들로 몰아가겠다는 태세다. 이런 에디터들의 활약은 위기에 처한 저널리즘의 신뢰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가 있다. <비비시>의 전 정치에디터 앤드루 마도 그랬지만 현임인 닉 로빈슨도 의사당 앞에서 누구보다 자주 마이크를 잡는다. 신문 쪽에서도 <가디언>의 패트릭 윈투어를 비롯한 쟁쟁한 정치에디터들이 기사 경쟁에 뛰어든다. 이들이 더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벌이는 곳은 의제설정의 영역이다. 이라크전의 진실을 밝히는 데 공헌한 <비비시>의 세계에디터 존 심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무모함을 끊임없이 지적해온 <가디언>의 경제에디터 래리 엘리엇, 지구 온난화 문제를 세계 어느 유수언론보다 앞서 부각시킨 <인디펜던트>의 에디터들 …, 이들이 제기한 어젠다들은 세계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방향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 유수 신문·방송들을 모니터링 하다 보면 저널리스트 능력 면에서 우리나라가 특히 뒤떨어져 보이는 인력층이 에디터급이다.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대개 1~3년 정도 부장이나 에디터를 하면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니 에디터로서 경력을 쌓고 노하우와 비전을 펼칠 겨를도 없다. 에디터로서 전문영역도 없이 여러 부장직을 전전한 것이 나중에 국장으로 선출되는 데 ‘화려한 경력’으로 둔갑하는 ‘이상한 나라’의 언론이다. 직책을 ‘기능상 분업’이 아니라 ‘서열의 표현’ 또는 ‘출세의 상징’으로 보는 풍토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비비시> 세계에디터 심슨은 1988년부터 20년간 현직에 있었고, <가디언> ‘경제에디터’ 엘리엇은 11년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예순다섯 노인인 심슨은 세계 분쟁지역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고, ‘이라크전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6주에 한 번씩 이라크에 가겠다’고 공언한 뒤, 실천에 옮긴 것을 화면에서 목격했다. 부문별 에디터뿐 아니라 편집국장에 해당하는 ‘디 에디터’도 장기집권 하는 게 상례다. <가디언>을 예로 들면 앨런 러스브리저는 95년부터 14년째 편집국장인데 언제까지 더 할지 알 수 없다. 그의 전임자도 20년을 채웠다. 최근 <한겨레> 지면을 더 눈여겨보면서 안타깝게 생각되는 점은, 특색 있는 몇몇 섹션을 빼고는 에디터들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달 만에 한번씩 쓰는 칼럼 외에 에디터들이 쓴 기사도 거의 없고 기획력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은 발생기사나 발표기사가 톱으로 올라오는 날도 많았다. 휴일 다음날 아침이 더욱 허전한 것은 에디터들의 기획력 부족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외국과 다른 여건을 탓할지 모른다. 물론 외국 언론을 금과옥조로 여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내 한 보수신문이 탐사보도팀을 그런대로 잘 가동하고 있고, 한 진보신문이 ‘개혁의 위기’를 진단하거나 ‘국가의 의미를 묻는’ 시리즈로 진보진영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역시 어려운 여건에서 나온 에디터의 노작들이다. 후배들을 탓할지 모른다. ‘기사를 고치느라 진이 다 빠진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아니라 권한을 너무 많이 쥐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권한은 내려보내고 일은 틀어쥐어야 한다. 데스크 역할에만 머물지 말고 때로는 데스크를 박차고 나갔으면 한다. 팀워크에 의한 공동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공동책임일지라도 에디터의 책임이 더 무겁다. 올림픽이 열렸을 때 스포츠부를 빼고는 ‘열중쉬엇’ 자세로 들어간 신문이 있는 반면, 스포츠에 끼어든 과학과 의학을 재미나게 소개하거나 올림픽에 동원된 환경기술을 부각시키는 등 ‘총동원’ 체제로 전환한 신문도 있었다. 에디터들은 ‘미디어 전쟁’의 야전지휘관들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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