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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9 20:14 수정 : 2009.05.28 17:12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노던록은행 파산 위기’(2007.9.13) → ‘로이즈 티에스비(TSB) 은행, 에이치비오에스(HBOS) 은행 인수’(2008.9.17) → ‘바클레이스 등 3개 은행, 공적자금 요청’ (2008.10.7).

세계 금융위기의 확산과정을 보여주는 영국발 대형 금융뉴스 세건. 이들은 모두 <비비시>의 특종보도로 제1보가 전해졌다. 놀라운 사실은 전세계 언론이 받아쓸 수밖에 없었던 이 특종기사들을 모두 한 사람이 터뜨렸다는 것이다. 로버트 페스턴이 바로 그다. 그는 일선기자가 아닌, <비비시>(BBC)의 비즈니스 에디터, 즉 산업부장이다.

우리 언론사에서 에디터 또는 부장이라면 ‘데스크’라는 명칭에 걸맞게 대개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에디터가 세계적 특종을 줄줄이 낚다니!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언론사들의 에디터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고 나면 의문이 풀린다. 그리고 몇 년 전 우리 언론계에 유행처럼 도입돼 겉돌고 있는 ‘한국식 에디터제’와 대비된다. 제도만 본떴지 행태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보수신문에서 일하던 초임기자 시절 사회부 회의 장면이 떠오른다. 데스크가 수첩 하나 달랑 들고 들어와서 고문하듯 한 명씩 기사 아이디어를 추궁하곤 했다.

영국에서 에디터들의 역할은 ‘내근 데스크’에 그치지 않는다. 일선기자보다 더 중요한 뉴스소스들을 만나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중요한 기사를 직접 쓰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논조를 이끄는 진정한 의미의 에디터다.

세계의 에디터들, 아이디어 내고, 기사 쓰고, 논조를 결정짓는다
에디터의 활약은 신뢰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
의제설정 미흡, 여건만 탓할 건가?

시민편집인의 눈 1회

페스턴 같은 에디터가 <비비시> 카메라 앞에 서면 런던 금융가, 특히 지금과 같은 위기 때에는 세계 금융시장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19일치 <업저버>를 보면, 금융가에 미운털이 박힌 페스턴에 대해 보수당이 대신 고발장을 접수했다. 금융시장을 교란했다는 명분이지만, 페스턴에게 정보를 흘리는 사람을 밝혀내 노동당 정부의 스캔들로 몰아가겠다는 태세다.

이런 에디터들의 활약은 위기에 처한 저널리즘의 신뢰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가 있다. <비비시>의 전 정치에디터 앤드루 마도 그랬지만 현임인 닉 로빈슨도 의사당 앞에서 누구보다 자주 마이크를 잡는다. 신문 쪽에서도 <가디언>의 패트릭 윈투어를 비롯한 쟁쟁한 정치에디터들이 기사 경쟁에 뛰어든다.

이들이 더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벌이는 곳은 의제설정의 영역이다. 이라크전의 진실을 밝히는 데 공헌한 <비비시>의 세계에디터 존 심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무모함을 끊임없이 지적해온 <가디언>의 경제에디터 래리 엘리엇, 지구 온난화 문제를 세계 어느 유수언론보다 앞서 부각시킨 <인디펜던트>의 에디터들 …, 이들이 제기한 어젠다들은 세계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방향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 유수 신문·방송들을 모니터링 하다 보면 저널리스트 능력 면에서 우리나라가 특히 뒤떨어져 보이는 인력층이 에디터급이다.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대개 1~3년 정도 부장이나 에디터를 하면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니 에디터로서 경력을 쌓고 노하우와 비전을 펼칠 겨를도 없다. 에디터로서 전문영역도 없이 여러 부장직을 전전한 것이 나중에 국장으로 선출되는 데 ‘화려한 경력’으로 둔갑하는 ‘이상한 나라’의 언론이다. 직책을 ‘기능상 분업’이 아니라 ‘서열의 표현’ 또는 ‘출세의 상징’으로 보는 풍토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비비시> 세계에디터 심슨은 1988년부터 20년간 현직에 있었고, <가디언> ‘경제에디터’ 엘리엇은 11년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예순다섯 노인인 심슨은 세계 분쟁지역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고, ‘이라크전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6주에 한 번씩 이라크에 가겠다’고 공언한 뒤, 실천에 옮긴 것을 화면에서 목격했다. 부문별 에디터뿐 아니라 편집국장에 해당하는 ‘디 에디터’도 장기집권 하는 게 상례다. <가디언>을 예로 들면 앨런 러스브리저는 95년부터 14년째 편집국장인데 언제까지 더 할지 알 수 없다. 그의 전임자도 20년을 채웠다.

최근 <한겨레> 지면을 더 눈여겨보면서 안타깝게 생각되는 점은, 특색 있는 몇몇 섹션을 빼고는 에디터들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달 만에 한번씩 쓰는 칼럼 외에 에디터들이 쓴 기사도 거의 없고 기획력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은 발생기사나 발표기사가 톱으로 올라오는 날도 많았다. 휴일 다음날 아침이 더욱 허전한 것은 에디터들의 기획력 부족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외국과 다른 여건을 탓할지 모른다. 물론 외국 언론을 금과옥조로 여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내 한 보수신문이 탐사보도팀을 그런대로 잘 가동하고 있고, 한 진보신문이 ‘개혁의 위기’를 진단하거나 ‘국가의 의미를 묻는’ 시리즈로 진보진영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역시 어려운 여건에서 나온 에디터의 노작들이다.

후배들을 탓할지 모른다. ‘기사를 고치느라 진이 다 빠진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아니라 권한을 너무 많이 쥐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권한은 내려보내고 일은 틀어쥐어야 한다. 데스크 역할에만 머물지 말고 때로는 데스크를 박차고 나갔으면 한다.

팀워크에 의한 공동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공동책임일지라도 에디터의 책임이 더 무겁다. 올림픽이 열렸을 때 스포츠부를 빼고는 ‘열중쉬엇’ 자세로 들어간 신문이 있는 반면, 스포츠에 끼어든 과학과 의학을 재미나게 소개하거나 올림픽에 동원된 환경기술을 부각시키는 등 ‘총동원’ 체제로 전환한 신문도 있었다. 에디터들은 ‘미디어 전쟁’의 야전지휘관들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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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마지막 목요일치 신문에 실리는 ‘시민편집인의 눈’은 시민편집인의 <한겨레> 지면 감시 결과를 공개하고 <한겨레>가 나아갈 방향을 독자들과 함께 모색해보는 난입니다. 또 시민편집인실을 통해 들어온 독자들의 비판과 의견도 소개됩니다. <한겨레>의 보도 활동에 대한 의견이나 비판은 전화(02-710-0698), 전자우편(publiceditor@hani.co.kr), 인터넷 블로그(http://blog.hani.co.kr/publiceditor)를 통해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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