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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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칼럼
초등학교 때, 겨울날 아침에 눈을 뜨면 유리창은 온통 얼음으로 그린 동화 속 나라였다. 온갖 모양의 꽃이며 나무·나비 …. 그 얼음 그림은 보는 마음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였다. 그리고 윗목에 ‘꽛꽛하게’ 얼어붙은 걸레. 요즘 아이들은 뒷날 그런 멋진 기억이 없을 테니 안 됐다. 학교 운동장 조회때도 춥고 교실도 춥고 알사탕 사러 간 가게도 춥고 어디 안 추운 데가 없었다. 이제 어디를 가도 따뜻하다. 시내버스 안도 가끔 창을 열고 싶게 덥다. 누구도 다시 그 추운 옛날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 따뜻함은 엄청난 에너지의 대가다. 몇 해 전 가 본 평양의 한 유치원은 온기가 전혀 없었다. 그 냉장고 안에서 얼굴이 빨갛게 언 네댓살 애기들이 ‘난 행복하다’는 노래를 부르는데,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다. 사실 우리도 수십년 전엔 저랬지. 저 신의주며 하얼빈 아이들까지 우리처럼 따뜻하게 지내게 되면 이 땅덩어리가 지니고 있는 에너지가 바닥이 난다. 그래도 우리는 내일 어찌될 값에 당장 따뜻하게 불을 땐다. 돌이킬 수는 없는 걸까. 정치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간다. 정말 잘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독재에 반대하면 그저 다 같은 편이던 시절, 민주의 구호 속에는 자유주의며 비합리, 편가르기, 선민의식, 비효율 등 온갖 것들이 제 본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이제 민주·반민주 구도가 껍데기가 되면서 모두 제 모습을 찾아간다. 올해로 <한겨레> 창간 20돌이 된다. 수많은 민주화의 ‘민’자 돌림 단체들도 스무살이 되었다. 앞으로 5년의 힘든 단련을 통해 그 안에 숨었던 비합리 등등을 모두 털게 될 게다. 이들이 반독재나 반한나라당의 껍데기를 벗고 그래도 마지막 남는 알맹이 ‘진보’는 과연 무엇일까. 요즘 과학계는 10년 전이 원시시대다. 우주론·양자론의 물리학, 진화론, 그리고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이들은 아주 겸손하게 그러나 확신에 차 이야기한다. 이제 철학·종교의 영역을 더욱 분명히 알아보게 되었노라고. 이들 분야의 최신 성과는 이렇다.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환상이란 거다. 시민편집인 1년을 마치면서 ‘민’자 돌림 <한겨레>에 몇 마디 해 본다. 되풀이하건대 선민의식, 편가르기, 비합리, 비효율을 털어내자. <한겨레>에 몸담았던 이들 중 웃으며 떠난 이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자.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구성원 대개가 잘 안다. ‘한겨레’라는 이름 자체가 공동체를 뜻한다. 기자나 직원들만의 <한겨레>는 아니다. 우리에게 <한겨레>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위안받는 모든 이들의 것이다. 현재 사장은 직원 직선제의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고 후보자들 합의로 선출되었다. 3년 임기를 1년으로 줄여가며 출범한 사장이 그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새로운 3년 동안 <한겨레>만이 아니라 우리 ‘한겨레’ 모두의 뜻을 모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보자. 진보는 이제 그동안의 권력을 내려놓고 서민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때다. 있는 이만 아니라 없는 이들도 더불어 사는, 에너지며 동·식물, 자원을 탕진하는 세상을 바꾸는 날을 바라며. <한겨레>는 그 진보의 중심에 자리 잡도록 노력할 일이다. 그런데 유리창에 핀 얼음 꽃을 다시 볼 날이 과연 오기는 올까?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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