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13 17:57
수정 : 2007.11.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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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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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칼럼
한 불교 세미나에서 요즈음 확산된 명상문화는 깨달음이 아닌 웰빙바람이란 우려가 나왔다. ‘나’는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해 봄으로써 변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실체 ‘나’가 없음을 알라는 게 참선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끼어들어 자기계발과 건강회복 등 ‘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나’를 비롯한 개체들이 실체가 아니란 생각은 이제 불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역으로 ‘0’과 ‘1’이라는 두 숫자의 무수한 결합이 낳은 가상세계의 실재성을 잘 보여준다. 요즈음 아이들은 온라인 세계에 들어가 돈도 벌고 전쟁도 하고 아이도 키운다. 오프라인의 이 세상에서 삼성이며 검찰이며 미국이 벌이는 일과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세상은 어찌 보면 ‘있음’과 ‘없음’, ‘0’과 ‘1’의 두 숫자가 벌이는 환(幻)의 세계 그 자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도 ‘나’가 불변의 독립된 실체라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한다. 나를 포함한 개별 생명체는 그 스스로가 주인공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복제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이기적 유전자’가 잠시 이용하고 버리는 숙주에 불과하다. 생물 개체들의 협동이나 이타적 행위도 본질은 좀더 효율적으로 유전자가 자기증식을 하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엊그제 김용철 변호사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정부 회의 내용이 삼성에 보고되는 데 10분, 시민단체 논의 결과는 20분, 신문사 논의는 30분 정도면 된단다. 숫자는 정확지 않지만 이야기 취지가 대충 그랬다. 온라인 가상세계의 주인이 숫자 ‘0’과 ‘1’이고, 생물개체의 주인이 유전자인 것처럼 이 사회의 주인은 바로 ‘돈’일 터. 그렇다. 한국사회의 제대로 된 주인인 돈도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한다. ‘돈’은 최고경영진과 전략기획실을 숙주삼아 삼성을 삼키고 우리 사회, 국가를 지배한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를 숙주로 삼으려 준비를 마쳤다. 삼성이라는 기업 하나가 국가 전체 수출의 5분의 1을 넘고 세금의 10%를 낸다. 세계에 유례없는 현상이다. 이제 헌법을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치권력을 어떻게 분점할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대는 갔다. 경제권력, 돈의 지배 앞에서 어떻게 사람다운 삶을 꾸리게 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야 할 때다.
이번 선거에서는 결국 ‘돈’이 승리할 듯하다. 양극화에다 크게 오른 집값이며 미국식 자본주의에 우리를 편입시키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등, ‘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정권 탓이다. 이런 뜻에서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은 사필귀정의 논리를 억지로 피해보려는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자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을 ‘돈’의 포로로 넘겨준 책임을 지는 게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자세다. 억지로 정권을 다시 잡으려 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잘못했으면 패배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할 일이다. 돈을 선택한 국민 역시 결국은 돈의 심판을 받으리.
도킨스는 ‘우주는 설계나 목적도 악도 선도 없고 맹목적이고 매정하고 냉담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인간사회는 ‘신뢰와 협동의 섬세하고 가냘픈 구조’라고. ‘지구에서 오직 우리만이 이기적 자기복제자의 독재에 맞서 반역을 할 수 있다’고.
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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