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0.23 18:10 수정 : 2007.10.23 18:10

김형태/변호사

시민편집인칼럼

‘국민의 선택, 2007 대선 D-56’, 요즘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하루하루를 이렇게 손꼽아 가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 어서 끝나기를 학수고대하는 마음이 절절이 읽힌다. 반대편은 재집권 의지가 그만큼은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10년 동안 권력을 쥐고 좋은 자리도 두루 나누어 가졌던 포만감 때문일까.

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집이며 일자리며 아이들 교육문제가 180도 달라지는 일반 국민들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 중간 이하 계층들이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이상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 10년 동안 서민과 중간층을 대변한다던 집권세력의 정책이 상당수 그 반대였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부동산이 폭등하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졌다. 진보고 가치고 필요없다는 자포자기가 이해는 간다.

현정권에서 추진된 로스쿨 논의만 해도 그렇다.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는 로스쿨’이라는 <한겨레> 칼럼은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돈과 명예, 권력이 동시에 보장되는 판·검사, 변호사 자리는 널리 같이 나누는 게 맞다. 또 법기술자들이 늘면 법률 서비스 혜택도 각 부문에 두루 돌아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료의 사회적 보장이나 평등 같은 서민 대중을 위한 가치에 복무할 수 있는 법조인 배출이 가능한지 여부다. 지금 제도 아래서는 학비 등에 총 1억원 이상을 지출할 경제력이 없는 계층은 원천적으로 법조인이 될 수 없다. 부와 권력이 서울과 상류층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부끄러운 판결을 남겼다. 유수한 헌법학자며 헌법재판관들이 그렇다고 했다.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가정의 자녀들이 가치를 선택하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법조인이 되는 길은 지금으로선 없다.

어디 로스쿨뿐이랴.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돈과 경쟁 논리만 가득하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하고 국공립 대학을 50%까지 늘려 동일한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네트워크화하자는 민주노동당 주장은 시의적절한 의제다. 12살 미만 아동에 대해 국가가 부담하는 보육비 수준을 보아도 참으로 딱하다. 스웨덴이 연 4천달러, 프랑스가 2천달러, 미국이 300달러인데 우리는 겨우 40달러란다. 지난 10년 ‘국민, 참여’를 내세운 정권들이 교육의 기회균등 문제만이라도 확실히 해결했더라면 “잃어버린 10년”에 동조하는 서민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게다.

지난 10월15일치 신문들에는 하버드대 첫 여성 총장이 된 파우스트 교수의 강연이 실렸다. 대학은 그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효율성을 훈련시키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내 대학 대부분이 앞다퉈 기업 경영방식을 도입하여 인문학이 쇠퇴하고 대학의 가치조차 돈과 효율로 통일되어 가는 현실이 부끄럽다. 파우스트 교수는 이렇게 쉽게 표현했다. “대학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다.”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본산인 미국의 손꼽히는 대학에서 나온 이야기라 더욱 무게가 있다. <한겨레>에서 이를 소개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목수가 사람이 되고,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수 있는 교육. <한겨레>가 좀더 과감할 일이다.

김형태/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민편집인의 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