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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8 17:32 수정 : 2007.08.09 15:28

김형태/변호사

시민편집인칼럼

30년 전 함석헌옹이 내던 ‘반체제’ 잡지가 생각난다. “<씨알의 소리> 있어요?” 물으면 책방 주인은 아연 긴장했다. 잘나지 않은 그저 평범한, ‘백성’ ‘민중’이 다 적절하지 않다며 ‘씨알’(씨ㅇ.ㄹ)이란 말을 썼다. 많이 알고 이름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그저 가을바람에 휘몰리는 낙엽 같은 존재요, 씨알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게 그 분 생각이었다.

돌이켜 보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차례로 선택한 씨알의 판단은 참 절묘하고 현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탈레반 인질사태를 보는 시각도 그렇다. 관련 전문가며 기자들이 놓치거나 잘못 본 대목도 씨알들은 정확히 짚고 있다. 한국사회동향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사태는 무모한 선교를 강행한 교회 책임이라는 여론이 56%,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 미국 책임 26%, 아프간에 파병한 한국 정부 책임 9%로 나타났다.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 방침을 두고서도 국민의 59%가 동맹국인 우리나라에 무책임한 태도라고 답했다.

<한겨레>가 지난 7월21일 처음 보도한 뒤 8월7일까지 약 290건의 아프간 인질 기사를 썼지만 국민의 이러한 분석에 못미쳤다. 초기부터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주고 그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기사를 배치해야 했다. 8월1일치에 실린 ‘총구 앞 21명의 목숨 미국에’라는 기사와 ‘카불이 아니라 워싱턴’이라는 홍세화 칼럼, 그리고 사설에서 비로소 중심을 잡았다. 국민 61%는 실질적 해결 책임자는 미국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초기부터 <한겨레>가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부각시켰더라면 인질사태 해결에 좀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7월27일 열린 독자권익위원회에서 이미 이러한 지적을 했지만 지면에 소개되지 않았다. 시민편집인이나 독자권익위는 밖에 있는 문외한들의 소리를 적극 들으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다. 전문가로서 볼 때 문외한들의 어설픈 인상비평이라 해도 새겨들으라는 뜻이다. 문외한인 독자들은 신문을 꼼꼼히 읽지도 않고 이런저런 지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그런 인상이 심어졌다면 그것은 그 문제를 다루는 비중이나 시기나 방식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씨알들의 신문에 대한 단순한 인상은 인상 그 자체로 중요하다. <한겨레>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물줄기는 독자·주주·국민한테서 나온다. 견해가 다르다거나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바깥 목소리들을 듣기 싫어하면 한겨레는 더는 한겨레가 아니다. 창간 이래 민족·민중·민주 운동단체, 시민단체들의 온갖 요구가 한겨레에 쏟아졌고, 수용하기 힘든 것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가 외부와의 소통을 꺼리는 관성이 붙은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8월1일치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탈레반은 테러 집단이라는 전제 아래 이런 테러 집단과의 타협은 없다는 국제 사회의 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현실론을 폈다. 하지만 국민의 54%가 미국이 이라크·아프간에서 벌이는 대‘테러’ 전쟁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힘센 미국이 그렇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자 전제가 되지만 그런 현실을 바꾸어내는 것은 바로 국민·민중·씨알의 힘이다. 이미 베트남에서 그랬고 앞으로 이라크·아프간에서 그럴 것이다. <한겨레>가 씨알을 믿는다면 씨알들에게 문 열고 귀 열 일이다.

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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