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변호사
|
시민편집인 칼럼
시민편집인(public editor)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나를 보자 단박에 이랬다. “너, 퍼블릭이란 말 들어가는 일 하지 마라.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학교 다닐 때는 나름대로 정치 권력과 거대 자본에 날 선 비판을 하던 친구다. 나이 쉰을 넘어서면서 ‘공익’(public interest)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보수로 변했다.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교수라는 지위에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니 그 스스로 사적(private) 이익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평양에 드나들면서 알게 된 이들이 있다. 지난 가을 식량지원 문제로 가서 보니 이른바 ‘기지’로 된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브루주아 양복을 만드는 옷감으로 프롤레타리아 인민복을 지어 입고 다닌다! 더는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심부름꾼 노릇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북쪽 사회도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남과 북의 친구들이 변하는 모습이 똑같다. 어려울 때는 소외계급이 대우받는 사회를 꿈꾸며 변화를 외쳤지만 기득권층이 되자 공익이란 말 자체를 듣기 싫어 한다. 얼마 전 보수교단 목사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웃과 약자에 관심이 많은 착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기업활동의 자유를 강하게 지지하면서 경제적 약자들은 부자들의 자선과 기부로 도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순진한 혹은 대책 없는 성선설의 신봉자라고 해야 될지 …. 만하임이란 사람이 그랬다던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그가 처한 위치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이치는 굳이 만하임 운운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이야기다. 〈한겨레〉는 어디에 서 있기를 바라는가. 창간사에서 노동자, 농민, 여성들에 더욱 관심을 가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정신에서 보면 지난번 제정한 ‘한겨레 취재보도 준칙’은 조금 미흡해 보인다. 준칙은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언론의 자유를 지킨다”고 되어 있다. 거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도 명문으로 밝혀야 하지 않을까. “부당한 권력과 부정부패에 맞서 사실을 찾아낸다”는 대목도 그렇다. “부당한 권력”은 “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부정부패”라는 문구 역시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1960~70년대에 제기된 부정부패 문제를 넘어서서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운용의 목표와 방식, 대안체제는 무엇인지를 분명히하고, 이에 근거해 사실보도를 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겨레가 어디에 서 있는지와 관련해 두 가지 역설이 보인다. 우선 10년차 기자의 월급이 같은 경력 방송기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정도 월급으로는 살아가기에 너무 버겁다. 한겨레 기자 자신이 경제적 약자다. 물론 정치·사회적으로는 강자에 들겠지만 경제적 약자로서 돈이 최고인 고도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잘 보일 것은 틀림없다. 월급이 적은 것이 한겨레 기자 본인과 가족들에게는 고통이겠으나 역설적으로 소외계층, 약자들에게는 훌륭한 대변자 구실을 할 수 있을 게다. 둘째 역설. 한겨레가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꿈꾸지만 살림살이의 60~70%가 대기업 광고로 꾸려진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신문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란다. 이런 형편의 한겨레가 자신을 먹여 살리는 대기업들에게 공익의 펜을 휘둘러 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참 어려운 문제다. 김형태 변호사 publiceditor@hani.co.kr
시민편집인실
|
| |
시민편집인실
|
시민편집인과 독자권익위원회는 명예훼손 등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예방과 자율적 구제를 위해 일하고, 시민을 대표해 신문제작에 관한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입니다. 한겨레 편집방향 등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시민편집인의 몫입니다. 한겨레의 정확하지 못한 기사로 불편을 겪으셨거나, 한겨레 편집방향 등에 의견을 전하실 분은 연락해 주십시오. 시민편집인과 독자권익위원회가 여러분의 입과 손발이 되겠습니다. 또 보내주신 의견 가운데 선정된 내용은 시민편집인이 직접 답변도 드립니다.
시민편집인에게 의견보내기 | ☎ 02-710-0698
* <한겨레> 시민편집인이란 무엇인가요?
* 외국에도 시민편집인 제도가 있나요?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