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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1 17:13 수정 : 2006.11.21 17:13

시민편집인칼럼

잘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기 어렵다. 애당초 노블레스 자체가 없는 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당치도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에서 비롯되는 부채의식도 찾기 어렵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부채의식이 없는 터에, 생존하려고 힘겹게 소외노동을 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없고 부채의식도 찾기 어려운 땅에서 사회 연대란 토대 구축은 우물에서 숭늉을 구하는 격이다. ‘반공·방첩’ 구호가 사라진 대신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구호가 나라 곳곳에서 나풀댄다.

과거 민주화 운동 경력을 무기삼아 ‘개혁’을 내걸고 집권한 세력이 권좌에 앉아 반민중적 행위를 거침없이 벌이는 것은 그들이 안으로부터도 밖으로부터도 견제받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치 사형수’였던 철도공사 사장은 고속철 여승무원들을 거리로 내쫓는 일에서 거침이 없다. 그의 행위는 오히려 “민주화된 시대에 분신이라니 …”라는 언설과 코드가 맞기에 나중에 그에게 장관 자리 하나 얻게 해줄지 모른다.

오늘 ‘세금폭탄’이라는 말처럼 황당한 것 중의 하나가 ‘개혁진보세력’이라는 말이다. 개혁과 진보를 두루뭉술하게 한데 섞어 사용하는 것은 오늘의 집권세력에 가당치도 않게 ‘좌파’ 딱지를 붙인 수구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겨레>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자율적 인격체가 사라진 사회에서, 개혁과 진보를 ‘개혁진보’세력이라고 싸잡아 말하는 것은 내부 견제력이 작동하지 않는 자유주의 보수세력과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진보세력을 싸잡아 말하는 것 이상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비정규직, 대추리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집권세력은 수구세력과 가깝지, 진보세력과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

기존 정치세력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합집산에 따른 정치공학적 숫자놀음을 벌이고 있을 때, 진보적 사회 동력은 지금 거리에 나설 참이다. 오늘(22일) 전국에서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 양극화 해소,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를 내건 민중 총궐기대회가 열린다. 민주노총이 파업에 들어가고 전농도 동참한다. 전교조도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연가투쟁에 나선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동력이 총집결하는 날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폭풍 전야라 할 21일, 그러나 이날치 한겨레에선 관련기사를 찾을 수 없다. 1면 머릿기사로 “이명박 왜 지지? 능력-경제 때문”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상관없다.

과거 한겨레 기사 중에는 기사화되기까지 특별한 사연을 안고 있는 것도 있었고, 구성원의 고뇌와 결단이 필요한 기사도 있었다. 물론 오늘 상당한 정도의 민주화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위해 진보와 개혁의 구분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온라인을 통한 신속하고 다양한 정보와 익명성으로 보호받는 언로의 출현, 시민사회 단체들의 활동과 더불어 오늘의 사회 구성원은 종이 신문에 만족하기 어려운 형편인데, 사회 동력의 움직임까지 소홀히 한다면 독자에게서 사회 변화를 위한 긴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겨레에 열독률 저하 조짐이 있다면, 그것은 긴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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