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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2 18:48 수정 : 2006.09.12 18:48

홍세화 시민 편집인

시민편집인칼럼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직 국방장관과 장성들이 나서기 시작한 환수반대 운동에 종교계 인사와 ‘원로’ ‘지식인’들이, 전직 외교관·경찰간부들이 뒤따르고 있다. 그들에게 미국은 조건 없는 섬김의 대상, 주군과 같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랴 뒤질세라 다투며 등장하는 그들의 행태나 조·중·동이 나팔수로 앞장섰다는 점은 익히 아는 바인데, ‘걱정 말라’는 주군의 말씀이 있었음에도 도무지 막무가내라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 그래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 각 분야, 곧 국방·외교·언론·경찰·종교·학문의 각 부문에서 주류로 행세했던 세력이 그 진면목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분단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의 모습은 안보 이데올로기로 나라의 공적 부문을 장악하면서 사익을 추구해 온 세력의 집요함을 빼면 설명하기 어렵다.

상식의 눈으로 미국 관련자들의 발언을 보건대 이 논란은 이미 끝났어야 마땅하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대사는 “장기적으로는 작전통제권 이양을 통해 한-미 동맹이 강화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한국이 작전통제권 행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은 한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역대 정권 중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다. 그런 미국이 한국에 작통권을 내줘도 괜찮다고, 한-미 동맹이 강화된다고 거듭 말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미국을 못 믿겠다고 미국을 향해 아우성쳐야 할 듯한데, ‘종미사상’을 뼛속까지 심은 수구세력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 않는다고 노무현 정부를 몰아붙일 뿐이다.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데, 미국으로선 신바람나는 황당한 일이겠다.

우리는 평평한 땅 위에 살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하지만 분단 상황이 강요한 비정상과 몰상식의 토대, 곧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한 수구세력의 퇴적물을 잊어선 안 된다. 그 퇴적물이 수구 퇴물들의 강력한 무기다. 그 퇴적물이 어떻게 이 땅의 역사·철학·종교의 기본조차 허물었고 정상으로 되돌리기 어렵게 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가령 학살의 땅에서 아직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한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구천을 헤매고 있다. 억울한 죽음과 일상적 고문의 성채에서 군림하던 세력이 있었건만 참회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어렵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보여줬듯이 나이 들어 죽음을 대면하면 이승의 부채를 덜고 떠나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 땅에선 종교는 번성하는데 참회나 반성의 몸짓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면수심이 공격성을 띤 무지막지한 사회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러므로 작통권 환수 문제는 ‘자주’의 문제 이전에 역사 청산 문제와 맞닿아 있다. 수구의 퇴적물은 사회 곳곳에서 물적·인적 재생산의 기반이 되었으며, 그것은 오랫동안의 퇴적물인 만큼 결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과거 청산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또는 한두 가지 청산 법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억을 되살리는 지난하고 끝없는 작업을 통하여 겨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한겨레〉는 작통권 환수 논란과 관련해 안이하게 대응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홍세화 시민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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