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8.01 19:52 수정 : 2006.08.02 09:12

홍세화 시민 편집인

시민편집인칼럼

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자유인이 아니라 마름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 체제가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인을 혐오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적 독립이 정치적 자유의 조건이라는 점을 모르는 이 누구겠는가.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속물적 자본주의의 극을 달리는 한국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한겨레〉는 어차피 양손에 떡을 쥘 수 없으며 자유와 비루함의 경계에 서 있다.

사회는 더욱 우경화하고 구성원들은 다투어 물신에 전력으로 투항하고 있다. 대중과 긴장하는 불편함에서 스스로 해방한 ‘급진’은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면서 찻잔 속의 태풍을 일으키고, ‘내강’이 전제된 ‘외유’ 대신에 ‘내유’를 증거하는 ‘외강’이 횡행하면서 수구세력에게 빌미마저 제공하고 있다. 대중은 더욱 멀어지고 대중이 멀어지는 만큼 이념이나 의식의 선명성은 더욱 강조되는데, 그 영향이 한겨레에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워낙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찬웃음으로 웃어넘기던 정도를 넘겨 사회 우경화가 한겨레의 탓이나 되는 양 비난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리고 나만의 일일까, 절독 소리가 더 자주 들린다. ‘조·중·동’ 독자들은 소리 없이 절독하는 반면에 한겨레 독자는 꼭 주위에 선언을 하기 때문인지 내 귀엔 한겨레 절독 소리만 들린다.

한겨레 구성원들에게도 소설 속의 근사한 주인공처럼 장렬한 최후의 유혹은 마지막 위안이고 기댈 언덕일지 모른다. 장렬함이 그 결단이 가져올 무책임까지 면죄해 줄 수 있다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거듭 주장하지만 진정한 자유인은 나 홀로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겨레 구성원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비루하게 생존을 지속하고 있다는 비난이 아니라, 조·중·동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구독자 수에 있다. 한겨레를 위해 ‘봐준다’는 독자가 많은데도 그렇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비루함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대중이 처한 삶의 조건이다. 못된 상사에게 한방 멋지게 날리지 못한 아버지의 비루한 모습은 희희낙락 철없던 우리 자신을 탓하게 하지 않던가. 때론 친구들 앞에 뽐내며 소개할 수 있는 부모를 그려보기도 하지만 우리를 살아남게 한 것은 아비의 지문이 사라진 손이고 어미의 재빠른 계산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 달 1만2천원 구독료에 주저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선명성으로 이 땅의 몰상식한 언론 환경을 바꾸려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겸손함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고 ‘한겨레마저!’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그려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각자 몫의 비루함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묻고 싶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성실한 일상의 결과로서 꼭 그만큼 올 뿐이다. 한겨레 비난이나 외면이 불성실한 일상에 주는 면죄부가 돼선 안 될 것이다.

오늘 한겨레의 소신은 화려한 비탄이나 장렬한 최후가 아닌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하나의 현실로 살아남는 데 있다. 물론 그 현실은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개선돼야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자발적 복종’은 한겨레의 사전에 없고 한겨레의 비루함은 자유의 버림에서 온 게 아니라 자유의 조건이다.

홍세화 시민 편집인

................................................................................................................



시민편집인과 독자권익위원회는 명예훼손 등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예방과 자율적 구제를 위해 일하고, 시민을 대표해 신문제작에 관한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입니다. 한겨레 편집방향 등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시민편집인의 몫입니다. 한겨레의 정확하지 못한 기사로 불편을 겪으셨거나, 한겨레 편집방향 등에 의견을 전하실 분은 연락해 주십시오. 시민편집인과 독자권익위원회가 여러분의 입과 손발이 되겠습니다. 또 보내주신 의견 가운데 선정된 내용은 시민편집인이 직접 답변도 드립니다.
시민편집인에게 의견보내기 | 02-710-0698
* <한겨레> 시민편집인이란 무엇인가요?
* 외국에도 시민편집인 제도가 있나요?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민편집인의 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