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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8 18:12 수정 : 2006.07.18 19:34

홍세화 시민 편집인

시민편집인칼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별보좌관과 국가안보회의 의장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소련 멸망 뒤의 유라시아 대륙을 미국의 ‘거대한 체스판’에 비유했다. 그런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엄청난 비대칭성이 있다. 최근의 사례만 보아도 오염된 미군기지 반환으로 수천억원의 복구비용을 한국이 떠맡아야 하는 일이나, 북한의 미사일 ‘연습’과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미사일 ‘공격’에 대해 유엔과 주요8국(G8)한테서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낸 미국의 힘으로 알 수 있듯이, 이 비대칭성이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은 구조적이며 상시적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이 구조와 긴장하면서 작은 변화라도 끊임없이 이끌어내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것은 대개 한국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덮어주는 구실이 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을 통해 얻은 ‘국익’이 무엇인지 내세울 게 없는 한국 정부엔 아직 철군 계획조차 없다. 우리와 달리 이라크 철군 계획을 발표한 일본은 미국과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은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실질적 수장인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협정을) 무조건 반대하려면 북한·리비아·쿠바·이란 등 폐쇄를 택한 국가들이 성공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며 일차원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줬는데, 더 심각한 것은 한-미 비대칭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협상 내용을 3년 동안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라며 한-미 대칭성을 주장하는 일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미국이 의회나 통상정책 자문위원회에 알리는 수준만큼 우리도 내용을 밝히는 게 옳다”라고 지적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대칭성에 대한 인식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를 이미 미국에 내준 김종훈 협상대표는 그것이 우리에게도 유리하다고 말할 만큼 비대칭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국에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미국한테 한국은 여러 나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미국은 총론상으로 준비가 충분히 돼 있고 각 나라의 각론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연구보고서 하나 내지 않은 채 반대여론에도 아랑곳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그것이 ‘소신’과 ‘양심’으로 표현된 노무현 대통령의 이데올로기다. 지난 15일치 “한-미 의약품 이견 FTA 협상 불투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9월 워싱턴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3차협상 전망도 불투명해졌다”라는 내용은 독자들을 헷갈리게 할 수 있다.

지난 13일 언론노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총파업을 벌였고 한겨레지부도 동참했다. 언론 노동자들은 신문 제작이나 방송을 중단하는 파업보다 프로그램이나 기사로 말해야 한다. 한겨레지부는 지난 토요일치 신문을 모두 ‘한-미 자유무역협정 특집’으로 꾸미자고 제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합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한겨레는 금융·자동차·부동산 특집을 내는 대신 자유무역협정 특집을 제공해야 마땅했다. 지면과 사설을 통해 계속 이 협정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를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특집은 종이신문의 특장이다. 국민들은 대부분 아직도 이 협정의 진실을 잘 모르고 있다. 한겨레는 왜 우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추진해선 안 되는지 더 치열하게 알려야 한다.

홍세화 시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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